노트북이 캠퍼스였다

코로나19 1년...꿈꿨던 평범함이 '특별함'이 됐다

by 코로나기

한국사회에서 대학 신입생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수능이라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집중된 교육과정을 마치고 처음으로 하고싶은 걸 ‘선택’할 수 있게 된, ‘학생다움’으로 정의되는 수 많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지점이 대학교 입학이다. 캠퍼스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가치관을 다지고 자아를 만들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동아리, 사회활동, 취미, 연애 등 20대를 관통하는 다양한 담론이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대학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학업의 연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대학 캠퍼스를 덮쳤다. 비대면 강의가 뉴노멀이 됐다.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할 강의실 출입이 금지됐다. 동아리, 학회 등 모든 대학 공동체가 멈췄다. 캠퍼스 밖에서 신입생을 환대하던 장소도 문을 닫았다. 코로나가 몰고 온 경제 한파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대학 신입생의 자리는 ‘줌’으로 한정됐다.


‘코로나 학번’으로 명명되는 20학번의 대학생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힘들고 외로운 1년이라고 회상하면서도, 절망만 남은 것은 아니라고 회상했다. 비대면 캠퍼스의 뉴노멀이 일상이 됐다면, 그에 맞춰 적응해 나가야 하지 않겠냐는 것의 그의 답변이었다.


인터뷰이: 남 훈(20, 대학 20학번)

인터뷰 일시: 2021년 2월 27일

인터뷰어: 유하빈


Q. 1년의 대학생활을 비대면으로 보냈다.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 상상했던 삶과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A. 다들 대학생활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캠퍼스 거닐며 연애도 하고, 고등학교 수업 때는 할 수 없던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강의실, 동아리 활동 이런 것들. 나는 아직도 대학생활이 로망으로 남았다. 1년 동안 내 캠퍼스는 노트북이었다. 못해본 게 참 많다. 가장 아쉬운 건 입학식을 못한 것. 레드카펫을 밟으며 입학식 장소까지 가는 그게 참 하고 싶었다.


Q. 비대면 수업은 어땠나. 대학 수업의 질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됐다.


A. 수강신청부터가 난관이었다. 선배들 만나서 설명 듣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구나 감을 잡아야 할텐데, 누구를 만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찌저찌 수업을 담고 첫수업을 들었다. 대학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교수가 ppt를 그대로 읽었다. 나름 철학에 관심이 생겨 동양철학 관련 교양을 들어보려 했는데 ‘고등학교랑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줌’을 통해 실시간 수업을 하는데 일부 수업은 녹음된 강의로 대체됐다. 녹화가 아니라 녹음. 그 수업은 결국 끝날 때까지 교수 얼굴을 한 번도 못 봤다.


그래도 2학기에는 학생도 교수도 한학기 비대면 수업에 대한 경험이 쌓여서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아쉬운 건 여전하다. ‘강의실 공기’라는 게 있지 않나. 아무리 ‘줌’을 잘 써도 한 공간에 모여 말 섞는 걸 따라가지 못한다.


Q. 수업 외의 생활은 어떤가.


A. 인간관계를 넓힐 기회가 없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지만, 활동 반경은 고향인 것만 같다. 새로운 친구가 생기긴 했지만 실제 소통은 고향친구와 더 많이 했다. 어차피 비대면이니까.


개강 전에 동기들 중에 먼저 만난 친구들이 있더라. 나는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자리가 사실상 동기들과 함께 모일 수 있는 마지막 자리였다. 결국 그 때 모인 애들끼리 친해졌다.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은 나름 다른 학과 사람들과도 교류가 있는 듯 하다. 나는 다른 학과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지방에서 서울 온 사람들은 다 공감할텐데, 서울 구경이 너무 하고 싶었다.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다 잠정 연기다.


Q. 그래서인지 20학번을 ‘코로나 학번’이라고 칭하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A. 공감한다. 우리는 참 안타까운 학번이다. 우리끼리도 그런 말 자주 한다. 우리가 꿈꿨던 평범한 일상들이 아주 특별한 게 됐다. 이제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모든 게 코로나로 막혔다.


그래도 우리는 나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도 각자 길을 찾고 있다. 우리만 힘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힘들텐데 대학 신입생이라는 이유로 동정하고,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 되니 여기 맞춰서 또 살아가게 된다. ‘코로나 학번’이라는 말, 크게 신경 안 쓰기로 이젠 마음 먹었다.


Q. ‘노트북이 캠퍼스였다’는 말이 뇌리에 남는다. 오프라인에서 했던 활동은 없었나.


A. 연극학회를 했다. 입학하면서 들어갔는데 1학기 때는 전혀 활동을 못했다. 결국 여름방학에 몰아서 활동했다. 아무래도 연극을 하는 학회다 보니 대면 활동이 필수적인데 연습장소 잡는 것 부터가 난관이었다. 연습실은 다 문 닫고, 만나서 계속 회의해야 하고 리허설 하는 모든 것이 마치 특별한 일 처럼 느껴졌다.


여름방학에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소중했고, 그래서인지 학회에 더 큰 소속감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열심히 준비한 극을 무대에 올리지 못했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연극을 올리기 2주 전에 사랑제일교회발 집단감염이 터졌다. 우리가 쓰던 연습실이 그곳 근처였다. 결국 1년 동안 무대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Q. 연극학회 활동의 꽃은 결국 무대에 서는 것일텐데 아쉬움이 클 것 같다. 1년을 되돌아보며 떠오르는 다른 아쉬움은 없나.


A. 만약 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좀 더 용기를 가지고 싶다. 하고 싶은 건 많았는데 코로나19가 바꾼 모든 것들이 두려웠다. 그런데 막상 지금 생각해보면 다 새로운 방법으로 어떻게든 이뤄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망설이지 말고 도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제일 크다.


Q. 용기를 가졌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말했는데, 코로나19와의 공존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또 어떤 전염병이 등장해 우리의 연대를 끊어놓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삶을 지혜롭게 이어갈 수 있을까.


A.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계획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하고싶은 일에 대한 계획을 가지면 틀어지고 잘못돼 계획을 빗나가더라도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지혜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큰 계획을 가지는 게 어떨까 싶다. 큰 계획이 있다면 작은 방법들은 수정하면 되는 것 같다. 대면 소통이 어려워졌어도 ‘줌’으로 할 수 있는 소통을 하고 있다. ‘이게 오프라인 모임을 어떻게 대체하겠어’ 싶었지만, 얼마 전에 줌으로 송년회를 했는데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나도 계획을 세워보고 있다. 그 시작으로 대학방송국에 들어갔다. 고등학생 때 부터 방송 일을 하고 싶었다. 계획을 잘 세워본다면 코로나가 내 진로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