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층집
동생이 우리 곁을 떠난 그다음 해 동생의 사고 보상금으로 아빠는 동네 안쪽에 있는 이층 집을 샀다.
이층 집은 샀지만 우리는 계속 가게에 딸린 단칸방에 살았다. 그 이층 집은 일층에 2 가구 이층에 2 가구 총 4 가구가 세를 살고 있었는데 세 사는 사람들을 내 보낼 돈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집 1층엔 세를 준 두 방 사이에 세를 놓지 않은 아주아주 작은 1평 정도 되는 방이 하나 있었다. 그 집에 그 방이 비어있다는 것을 안 나는 아빠에게 그 방을 내가 쓰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아빠는 허락해 주었다.
며칠 뒤 혼자 그 방을 청소하고 짐도 혼자 옮겼다. 생전 처음으로 내 방이 생긴 거다. 모르는 두 가족 사이에 끼여 나 혼자 지내게 되었지만 너무 행복했다. 이젠 술주정뱅이 아빠와 무심한 엄마가 있는 지긋지긋한 단칸방이 아닌 나만의 공간에 숨어서 가족들을 덜 볼 수 있게 된 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중3 여름방학 내내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방에서 안 나왔다. 불행하고 불안한 가족이 있는 집보다 그 작은 방에 혼자 누워 창문을 열어 놓고 하늘만 보고 있어도 너무 행복했다.
남동생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난 후 우리 가족은 더 침울하게 살았던 것 같다.
아빠는 거의 매일 술을 먹고 술주정을 부렸고 엄마는 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대했다.
중3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고 추석이 지났던지 안 지났던지는 모르겠지만 밤공기가 조금 쌀쌀했던 어느 날 밤. 이 층집 작은 방에서 자고 있던 나를 엄마가 다급히 깨우러 왔다. 그 밤 엄마는 나에게 스쿠터로 어디를 좀 데려가 달라고 했다.
엄마가 알려준 곳은 스쿠터로 10분 정도 걸리는 옆동네의 같은 반 친구네 집 앞집이었다. 엄마는 도착하자마자 스쿠터에서 내려 친구네 집 앞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엄마를 따라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엔 어떤 할머니가 있었고 엄마를 보자 방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있었다. 나도 그 방을 보게 되었고 그 방안에는 어떤 아줌마와 아빠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아빠는 옆동네 과부 아줌마와 바람이 났던 것이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그 과부아줌마의 시어머니에게 딱 걸려서 그 난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난 혼자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왜 하필 바람을 피워도 친구네 집 앞집 아줌마랑 바람이 났단 말인가. 내일이면 학교에 소문이 퍼질 생각을 하니 아빠가 바람을 피운 것보다 그게 더 화가 나고 창피했다.
아빠는 다음날 술에 취해 내가 있는 앞에서 엄마에게 이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아줌마랑 그 아줌마 아들이랑 같이 살고 싶단다. 난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늘 술에 취해 화만 내는 술주정뱅이 아빠가 우리 집에서 나가서 그 아줌마랑 살았으면 하고 바랬다. 나는 엄마에게 당장 이혼을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아빠는 그날 이후 이 층집 나의 작은방에서 지냈고 세 모녀는 가게 단칸방에서 지냈다.
그 후 아빠는 엄마에게 이혼을 해달라며 술에 취해 매일 엄마를 괴롭혔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피해 다녔다. 급기야 아빠는 엄마를 찾으며 단칸방 창문 유리창까지 깨며 폭력적이 되었고 계속되는 아빠의 괴롭힘에 엄마는 드디어 이혼을 결심했다.
엄마는 이혼을 결심한 날 나를 데리고 외삼촌이 살고 있는 시내에 이사할 집을 보러 다녔다. 나는 드디어 무서운 술주정뱅이 아빠와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엄마와 방을 보러 다니며 신이 났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사할 집을 보고 와서 엄마는 이혼을 통보하러 아빠가 있는 이 층집 작은방으로 갔다. 그러나 그 방엔 아빠가 술에 취해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아빠는 남동생이 사고를 당해 실려갔던 병원으로 실려갔고 응급조치를 받고 머리 쪽에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에 그날 저녁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깜깜한 저녁 아빠가 실린 엠블런스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첫째 딸이라는 이유로 엠브런스 앞자리에 타게 되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차가 많이 막혔다. 나는 혹시 아빠가 병원으로 가는 도중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기사아저씨가 신경 쓰였지만 가는 내내 눈물이 나왔다. 그 엠블런스 안에서 어린 용순이는 서럽고 서글퍼서 소리 없이 한참을 울었다.
아빠는 죽지 않았다. 아빠는 쓰러지고 얼마 안 돼서 엄마에게 발견되었던 것 같다. 대학병원에서 뇌출혈 수술을 받고는 아무 이상 없이 회복되었고 퇴원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후 엄마에게 이혼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그렇게 지내게 되었다.
아빠가 퇴원을 하고 돌아온 후 단칸방 집주인 할머니는 우리에게 자기 집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그동안 자기 집에 세를 살던 불행하고 한심한 사람들의 삶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나 보다. 부모님은 겨울이 되기 전 아빠 명의로 된 이층 집의 1층에 살던 한 가족을 내보내고 그 방으로 이사를 했고 내가 혼자 쓰던 작은방엔 동생이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이 층집 1층엔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이 같은 거실을 쓰며 한동안 함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