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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순이 이야기

상업고등학교

by 설여사

중학교 1학년 때 시내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자기 방이 있었고 자기 방에 책상도 있었다. 그 친구는 배부르고 따뜻하면 공부 안 하고 잘까 봐 엄마가 밥도 조금 주고 자기 방에 난방도 안 넣어 주고 밤늦게 까지 공부를 시킨다며 자기 엄마가 계모 같다고 우리에게 투덜거렸다. 난 그 말을 듣고 자기 방에서 공부하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그날 이후 나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칸방에서는 가족들이 자야 하니 밤에 방에서 공부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장사가 끝나고 문 닫은 가게에서 불을 껴 놓고 공부를 했다. 그러나 그날 12시가 조금 넘자 엄마는 가게와 이어져 있는 방문을 신경질적으로 열더니 가게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만 불 좀 껴. 잠 좀 자게."

그날 이후 난 아주아주 작은 방을 갖기 전까지는 늦은 밤까지 편하게 공부를 해보지 못했다.


나의 부모는 딸을 대학에 보낼 생각은 아예 없었다. 아빠는 나에게 얼른 커서 돈을 벌어오라고 했다. 딸이 빨리 커서 돈을 벌어와 가난한 엄마, 아빠의 살림에 보템이 되었으면 하고 바랬을 것이다. 엄마는 두 딸을 힘든 상황에서도 학원에 보내주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주산학원엘 다녔다. 중학교 2학년 겨울부터는 버스를 타고 예전부터 내가 살고 있는 군(지금은 행정구역이 시지만 예전엔 군이었다)에서 유명한 상업고등학교 언니들이 다니는 큰 주산학원엘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는 학구열이 높았던 것 같다. 나를 상업고등학교를 보내서 경리를 만들 목표를 가지고 중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시켰던 것이다.


나도 어렴풋이 대학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언감생심이었다. 외삼촌 가게에서 일용직을 하는 아빠와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는 엄마에게 대학에 가고 싶다는 내 속마음을 말할 용기가 없었다. 대학은 정말 부잣집 자식들만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 형편에 어림도 없을 것 같아서 지레 포기하고 엄마가 가라고 하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우리 동네 언니들도 친구들도 모두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린 나는 대학을 나오든 상업고등학교만 졸업하든 나의 진로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몰랐고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빨리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 알았다.


상업고등학교는 3학년 1학기가 끝나면 취업을 시키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예쁜 친구들은 졸업하기 전 은행이나 대기업에 취업을 한다. 나는 어중간히 공부를 했고 어중간한 키에 어중간히 뚱뚱하고 어중간히 생겼다. 그래서 그랬는지 좋은 곳에 취직을 하지 못할 거라고 지레 겁을 먹었었다.

그리고 어중간한 꿈이 있었다. 상업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뜬금없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3학년 2학기 여름방학 때 예전에 내가 다니던 주산학원 원장님을 찾아가서 취직을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곳에선 나도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장님은 고심하더니 나를 채용해 주었고 그렇게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산 보조선생님이 되었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따르는 아이들이 좋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지만 몇 달이 되지 않아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학원을 그만두고 다시 취업을 준비했다.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추천으로 대기업 보험회사에 입사를 했다. 같은 학교 친구들 5명과 함께 취업이 되었고 6개월 인턴을 거쳐 정직원으로 채용이 된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각 지점으로 발령이 났고 나는 광화문에 있는 본사에 발령이 났다. 광화문 사거리에 멋지게 서있는 빌딩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아주 넓고 사람들도 많은 사무실이 나의 직장이었다. 내 인생이 이제부터 피기 시작하나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그곳엔 나보다 1년 먼저 취직을 해서 일을 하고 있는 학교 1년 선배 언니가 있었다. 나는 선배가 있다는 것에 위안이 되었고 반가웠다. 그러나 그 언니는 나를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 선배에게 업무를 배웠다. 일은 단순작업이었다. 청약서에 작성된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단조로워 실망했지만 처음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무뚝뚝하고 다정하지 않은 선배언니에게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회사일에 적응을 하던 어느 날 다른 부서에 또래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친구들은 학교추천으로 면접만 보고 입사한 우리와 달리 공채시험을 보고 입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나이인데 한쪽 구석 칸막이 안에서 컴퓨터에 청약서를 입력하는 단순직을 하는 우리와 달리 공채로 입사한 그들은 오픈된 사무실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공채가 아닌 소위 특채로 입사한 우리들은 사무직으로 가지 못하고 이 부서에서 계속 단순업무직만 해야 한다고 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멋진 사무직 여사원이 되는 줄 알았던 나는 큰 실망감과 자괴감을 느꼈다.

더불어 내 학교 선배 언니가 나에게 조금만 더 다정했어도, 그 언니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더라면 조금 더 참아보았을 텐데 그 언니처럼 나도 기계처럼 컴퓨터 앞에 무뚝뚝하게 앉아 청약서를 끝없이 입력하는 기계로 전락할 것 같았다. 그래서 6개월 만에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는 엄마, 아빠와 가난하고 불행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내느라 다른 세상은 꿈꿔 볼 여유도 없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던 용순이가 사회로 나와보니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이 있는 것 같았다. 우물 밖에 더 좋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에게는 그런 길잡이가 없었다.

무작정 취직을 하고 돈을 벌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태어나 보니 우리 부모의 첫째 딸이었고 그 부모 밑에서 가난하고 불행하게 살아온 것도 서러운데 사회에서도 내가 선택할 기회도 없이 특채니 공채니 출신성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싫었다. 부모에게 사랑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용순이는 자존감이 낮았고 사회적 대인관계도 제대로 형성이 안된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인이 되었고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무지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아무런 꿈도 없었다. 그래서 낯선 사회를 감당할 자존감도 싸울 용기도 없었고 헤쳐나갈 방법도 몰랐다.


그렇게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용순이는 엄마의 바람대로 훌륭한 경리가 되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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