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들을 낳고 아빠는 10살인 나에게 동생 이름을 뭘로 해야 하는지 물어왔다.
돌림자가 끝에 `환`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어린 용순이는 용순이 동생이니까 `용환 `이가 어떻겠냐고 했고 아빠는 고심하더니 그 이름이 좋다고 했다.
내 촌스런 이름도, 바로 밑 여동생이 남자이름인 것도 엄마가 아들을 낳으라고 외할머니가 돈 주고 이름을 지어왔다고 했는데 왜 귀한 아들이었던 막냇동생은 외할머니가 작명가에게 부탁해 이름을 안 지어 주고 무식한 아빠가 10살인 딸과 앉아 이름을 지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내 마지막 남자 동생은 `용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체격도 좋았고 또래들에 비해 키가 컸던 나는 10살 차이가 났던 남동생을 업어서 키웠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남동생이 5살이 되었을 때부터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친구집에 데려가기도 하고 방학 때는 막냇동생이랑 시간을 많이 보냈다. 나를 잘 따르는 막내 동생이 참 많이 예뻤다.
아빠도 남동생이 태어나고 조금 안정을 찾았고 술도 덜 먹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50m 옆에 새로 지어진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동안 살던 방 보다 두 배 큰 방에 두 배 큰 가게가 딸려있었지만 여전히 단칸방이었고 우리 집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해 우리 동네에 큰 목욕탕이 생겼는데 목욕탕 건물을 지을 때 보일러설치 작업 일을 하던 아빠는 운 좋게 목욕탕 설비 담당으로 채용되어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목욕탕 직원이 되었다. 아빠의 인생 중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었을 것 같다. 귀여운 막내아들도 있고 먼지 먹고 힘들었던 막노동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따뜻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게 된 것이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우리 가족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한창 사춘기였던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한 3일 후였다. 그날은 내가 방학 동안 알게 되어 짝사랑하던 같은 동네 1년 선배 오빠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 오빠로 가득했던 날이었다. 5교시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고 집에서 연락이 왔다며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 내가 집에 왔을 땐 국민학생인 내 여동생도 집에 와 있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얼마 후 집주인 할머니가 남동생이 집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고 우리 자매는 옥상 계단에 앉아 울었다.
우리 마을 앞에는 4차선 국도가 있다. 그땐 차가 많이 다니던 4차선 차길에 횡단보도 하나 없던 시절이었다. 나도 6학년 때 그 길을 건너다 커다란 트럭에 치일 뻔했었다.
집 앞 위험한 4차선 차길에서 6살 어린아이들 4명이 어른도 없이 차길을 건너려다 남동생이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내가 가족 중에 젤 좋아했던 동생이었는데. 남동생이 있어서 그나마 행복했었는데. 그렇게 나의 마지막 남동생은 6살 어린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다.
남동생이 죽은 날 누군가 우리 자매를 남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데려다주었다. 그곳에 엄마가 있었고 엄마는 나를 보더니 담담한 얼굴로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나는 엄마가 아들을 잃은 슬픔에 울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울고 있지 않았고 너무 차분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보고 당황했다. 나는 그 후로도 우는 엄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에 비해 아빠는 매일 술을 먹고 울었다. 동생이 갖고 싶다 던 세발자전거를 못 사줬다며 아들을 뿌리고 온 강에 세발자전거를 사서 넣어주고 왔다며 술에 취해 나에게 말하며 울었다.
"아빠, 우리가 있잖아요. 울지 마세요."
나는 아빠가 무서웠지만 좋아하지 않았지만 용기 내어 아빠를 위로했다.
그러나 아빠에게 돌아온 말은
"딸년은 다 필요 없어."였다.
아빠의 그 말에 나는 뭔지 모르게 억울하고 화가 났다. 여태껏 아들 못지않게 그렇게 부려 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내가 딸이라 필요 없다고? 나는 내가 아빠의 딸로 태어난 것이 참 한스러웠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아빠와 더 멀어졌다.
그리고 그 후 가끔 생각했었다. 내가 6학년이었을 때 집에 없는 엄마를 찾으러 4차선 차길을 건너다 커다란 트럭에 치일 뻔한 그날.
어쩌면 그날 아빠에게 아무 필요 없는 딸년인 내가 죽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