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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빠뇽금영 Oct 12. 2023

방울방울 터지는 소화제

( 저장용 음식 4 )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송골송골 피어오르는 한 여름으로 기억된다. 교회카페 책임자로 있었기에 재철에 나오는 먹거리로 메뉴를 개발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던 그때였다. 어느 날 교회 여자장로님 한분이 내게 다가오시더니 "매실청을 많이 담아 여유가 있는데 혹시 카페에서 필요할까?" 하시며 다정하게 물어 봐 주시기에 나는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라는 말로 호의에 기꺼이 응했다.


장로님은 제법 많은 양을 가져다주셨다. 일일이 매실을 걸러 페트병에 진액만을 담아 그 무거운 것을 손수

들고 와 주심이 어찌나 감사한지 작게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뭘 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장로님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매실진액에 새로운 옷을 입혀 드리면 더 좋아라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갑자기 맘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야채와 과일이 있는 코너를 찾았다. 방울토마토를 양손 가득 들어 올렸다. 빨간색 그리고 노란색. 아직 만드는 건 시작도 안 했는데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방울토마토를 계산하고는 '다이소'로 향했다. 담을 그릇이 필요해서였다. 적당한 사이즈와 모양을 고려해 몇 개의 용기를 구입해 나왔다.


이 날도 하루종일 일을 하고 퇴근하는 길이라 몸은 피곤한 상태인 게 분명한데, 방방 뛰어다니는 나를 보고 누군가를 위해 뭘 준비할 때는 어디서 이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일단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나는 본격적으로 메뉴 만들기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가스에 물 올리기, 방울토마토 세척하기, 방울토마토에 칼집내기, 몇 가지의 허브잎 준비하기, 용기 세척해 건조하기, 얼음물 준비해 두기 등등 나는 최대한의 일머리를 돌리느라 아주 부산스러웠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칼집을 낸 방울토마토를 입수시켜 온기만 살짝 주고 재빨리 건져 얼음물에 헹궈야 한다. 이때 시간을 끌면 방울토마토의 식감이 물러져 청량한 음료를 만들 땐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러니 최대한 눈의 감각으로 시간조절을 하는 것이 비법이자 실력이다. 그것만 잘하면 그다음은 식은 죽 먹기다. 냉수마찰을 하는 방울토마토는 이제부터 벌거벗어져야 한다. 속살이 찢기고 상처가 나면 안 된다. 겉껍질만 조심스레 훌러덩 ~~! 껍질이 벗겨진 방울토마토에 남은 수분이 어느 정도 날아가면 용기에 허브잎과 건조 과일칩을 중간중간 넣어 보기 좋게 잘 담고 장로님이 만들어 주신 매실진액을 부어주면 완성이다. 물론 바로 먹을 수는 없다. 매실진액에 토마토의 향과 허브의 향이 배어져 알맞은 맛을 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 봤자 3일 정도면 충분하다.

 



완성된 '매실진액토마토절임'을 테이블에 놓고 몇 장의 인증 사진을 남기고는 쇼핑백에 잘 담아 다음 날 장로님을 찾아갔다.


"장로님, 장로님이 주신 진액으로 제가 뭘 좀 만들어 왔는데요. 이건 '매실진액토마토절임'이라고 하는 건데 소화가 안 되실 때 드시거나, 티 타임 할 때 사이드 메뉴로도 좋고요, 얼음 넣은 탄산수에 타서 드시면 청량한 에이드로 변신이 됩니다. 너무 감사해서 주신 걸로 좀 만들어 보았으니 맛있게 드셔 주세요." 


그렇게 작은 쇼핑백 하나를 건네니 장로님은 생각지도 못한 메뉴라면서 가끔 뭘 먹고 싶어도 나이 드니 소화를 못 시켜 힘들었는데 입이 심심할 때 이걸 먹으면 너무 좋겠다! 하시며 환한 미소를 보여 주시는 게 아닌가. 실상은 장로님으로 인해 얻은 재료였건만 생각의 전환으로 퓨전 저장식품을 만들어 드리니 주신 분도 행복, 새롭게 만든 나에게도 나눔의 행복이 선물처럼 온 거 같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해 여름은 장로님 뿐만 아니라 카페 손님들에게도 너무 신선하고 고급진 메뉴라며 심심치 않은 칭찬과 함께 재료 완판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 같은 재료이긴 하나 옛 어르신들이 만들어 왔던 저장음식과 요즘 우리 세대가 만드는 저장음식에는 차별성이 있다. 그게 곧 문화의 차이고 세대의 차이인 것 같은데, 옛 방식도 훌륭한 것이 많기에 그것에 도움 받아 크게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꾸준히 다른 시도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 우리가 만든 것을 어른들도 이렇게 좋아하시니 말이다.)


자~~~~ 그렇다면, 

다음은 어떤 식재료로 눈과 입을 호강시키고 냉장고 한 공간을 빛낼 건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볼까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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