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용 음식 3 )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트나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먹거리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고르라면 나는 그것을 '밤'이라 읽고 '보약'이라 쓰고 싶다. 이 재료로 말할 것 같으면 비타민 C를 포함한 각종 비타민과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5대 영양소를 다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영양만점 간식이기 때문이다.
결혼 전엔 엄마가 밤을 사 와 삶아 주시면 보통은 각자가 숟가락으로 파 먹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가끔 아빠만 과도를 가져오셔서 껍질을 벗긴 후 아빠 꺼니 손대지 말라며 엄포를 내리시고 채반 위에 널어 며칠을 말리셨다. 그렇게 말리신 밤을 봉투에 담아 놓으셨다가 심심하실 때 한알씩 입에 넣어 오물오물거리시는데 난 그 맛이 궁금해 아빠 앞에 턱을 괴고 앉아 하나만 주기를 기다렸었다. 그러면 아빠는 정말 생색을 엄청 내시며 말린 밤 한알을 입에 넣어 주셨다. 처음엔 아무 맛도 나지 않아 이게 뭐냐고 투덜거렸더니 아빠는 "그냥 오물오물 거리며 있어 봐"라고 하시며 씩~ 웃으셨다. 나는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랬더니 한참만에 침으로 인해 딱딱했던 밤이 불어 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생각보다 고소하고 맛있었다. 그때 알았다. 밤을 이렇게도 먹을 수 있구나!
결혼을 하고 주부구단이 된 나는 그렇게 맛있는 밤을 오랫동안 먹고 싶어 여러 정보를 통해 제철이 지나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름하야~
보늬밤을 만들기 위해선 밤의 속 껍질을 살려 밤알을 흐드러지지 않게 여러 차례 반복해 삶아내어 떫은맛을 없애는 게 제일 큰 포인트이다. 그런 다음, 설탕을 넣고 뭉근히 장시간 졸여 냉장보관하며 먹는 메뉴인데 나는 똑같은 맛이 싫어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당연히 들어가는 재료도 설탕 말고 여러 가지가 더 있다.
맛간장을 비롯해 계피, 생강, 꿀 등등 ( 일부는 비밀^^ )
그렇게 만든 보늬밤은 색깔이며 모양이 참 보암직하다. 윤기도 좌르르 흐르는 것이 딱 살찔 각이다. ㅋㅋ
오늘은 그 옛날 아빠가 나에게 건네주었던 간식처럼 내가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어머님께 보늬밤을 이용한 간식을 만들 거다. 어른들이 즐겨 드시지는 않지만 건강에 좋은 요거트에 그레놀라도 조금 올리고 그 위에 보늬밤 한알과 걸쭉하게 졸여진 소스를 주르륵 얹어 드렸다. 딱딱하게 말린 밤이 무슨 맛일까? 싶어 궁금해하던 나의 어릴 적 모습처럼 나의 부모님과 시어머님도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내 요리를 바라보시다 맛있게 드셔주셨다.
맛있다 맛있다 하시며 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 드시는 부모님들을 바라보다 얼른 냉장고로 뛰어갔다. 그리고 만들어 놓은 보늬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두 개로 나눠 담았다. 만드는 과정이 힘들긴 하지만 너무 잘 드시는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었다. 집에 가셔서 "하나씩 꺼내 드시거나 제가 해 드린 것처럼 요거트에 올려 드세요" 했더니 양가 부모님들이 좋아라 하시며 선듯 가져가신다. (진작 해 드릴걸!)
앞으로 밤이 떨어지는 계절이 되면 보늬밤을 좀 많이 만들어야겠다. 비록 손가락의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질 것 같지만 어릴 적 아빠가 말려 놓은 밤을 야금야금 훔쳐 먹은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왔다.
내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을 사러 마트에 가야겠다. 당장 냉장고에 없는 보늬밤이 다가오는 겨울에 분명 생각날 거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