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의 중장년기 8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8


그 과수원을 팔아서 우리 집 식구들은 전부 다 서울로 올라왔다. 그 당시에 강남구 암사동 공신 주택이라는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약수동 시장에서 상점을 하고 있었다. 내 처도 딸 명자도 종종 그곳을 찾아오곤 하였다.


그런데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그 상점을 아주 망치고 말았다. 그렇게 되니 이제는 부득이 우리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하다가 보니 나는 또다시 박일동씨에게 빚이 백오십만 원이나 된다. 이 빚은 화투를 하고 바둑을 두고 술을 마셔서 그렇게 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순전히 장사에서 적자를 본 것이다.


경주에서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홧김에 많이 마셨기 때문에 몇십만 원의 돈을 썼지만, 약수동에서는 전연 그러하지가 않았는데 일백오십만 원이 홀랑 다 날아갔다. 아무리 결심을 해 보았지만 약수동에서 없어진 돈은 꼭 누구에게 빼앗긴 것 같았다. 어찌 된 일인지 한 번 마음이 비뚤어지니 매사가 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해 놓고 집으로 돌아오니 내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죽을 운수를 가진 내가 살면 무엇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삼일인가 사일인가 일체 물도 먹지를 않았다. 그러자 온 가족들은 이미 잘못한 일로 죽는다고 그 일이 고쳐질까 하면서 밥을 먹으라고 권하였다.


해서 나는 아직도 나이 젊으니 앞으로 또 기회가 있을는지 하는 미련 하나로 어머님의 말씀대로 밥을 먹었다. 그리고 그 집을 팔아서 박일동씨의 돈을 갚고 남은 돈으로 명일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사를 한 뒤에 별안간 많은 집이 들어섰다. 그러함으로 강남구가 강동구로 바뀌어졌다. 강남구로 되어 있을 적에 나는 명일동에 온 즉시 강남구청 녹지과로 일을 하러 다녔다. 그 당시에 내가 잘 아는 김창규씨의 둘째 아들인 김영진씨가 그 강남구청 녹지과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녹지과의 일을 하러 다녔던 것이다.


하루 8시간씩 일을 하면 여름철에는 해가 하늘 가운데 있을 때에 일이 끝이 난다. 그러다가 보니 일이 끝이 나고 여자들과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주고받는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마셔도 한두잔에 지나지 않는다. 희담 비슷하게 여자들과 얘기를 몇 번 하면 그 여인은 당신의 맘을 버리고 내게 달라붙는다. 그때만 하여도 거의가 젊은 여자들이다.


구청 직원들이 말을 하여도 매정한 듯이 탁탁 쏘다가도 무슨 일인지 내가 말을 하면 불응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흑석동에 사는 한 여인은 신체가 건전하고 구청 직원들도 희담을 걸면 그냥 두지 않는 그 여인네도 내가 말을 하면 절대로 성을 내지 않고 순순히 내 말에 따르곤 하였다. 그렇게 아는 여자는 돈 따위는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내 성질을 알다가 보니 절대로 무슨 요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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