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 가끔 나에게 하는 말이 있어. 바로 '아빠가 너처럼만 해주면, 열명도 키울 수 있겠다.'라는 말이야. 물론 난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게 보이나 봐. 사실 코코 한 명도 버거울 때가 있긴 하니까.
그래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조금 생각해 봤어.
1. 일단 난 아기를 너무 좋아해. 미래가 어둡단 것을 알면서도 아기들이 좋아서 소아과를 선택했을 정도로 아기들을 좋아하거든. 다른 것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아들이랑 같이 있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 나한테 안겨서 꼬물거리는 작은 움직임이 너무나 좋고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꼬순내가 너무 좋아. 작은 발, 손이 너무 귀엽고 손가락 발가락이 너무나 앙증맞아. 그냥 바라만 봐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오물 거리며 이유식을 먹는 것도 장난을 치면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도 눈웃음도 너무나 행복해. 인생에 많은 행복이 있겠지만 이걸 뛰어넘는 즐거움이나 행복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 난 아기를 너무 좋아해.
2. 난 잠에 그렇게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 아니야. 잠 못 자며 살아온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하루 이틀 정도 새벽에 깨고 몇 시간밖에 못 자더라도 생활에 큰 지장이 생기지 않아. 그래서 새벽케어를 내가 전담해도 일하거나 생활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어. 덕분에 잠을 푹 잔 아내가 낮시간에 더 활기차게 아기와 시간을 보낼 수 있더라고. 물론 누적되면 힘들겠지만, 쉬는 날 낮에 날 꼭 재우려고 하는 아내 덕에 힘든 줄 모르고 신생아시기도 잘 지나갔어.
3. 난 엄청난 집돌이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집에 있는 것을 제일 좋아해. 가까운 카페 나들이 정도가 제일 큰 외출인 사람이라, 아기와 집에서 복작거리는 게 전혀 힘들지가 않아. 사람들을 만나거나 하면 피곤해서 며칠 정도 요양이 필요한 사람이거든. 나의 사회활동은 출퇴근이면 충분해.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어서, 내 시간에는 집에만 있는 편이야. 게다가 취미로 하는 일들도 집에서 하는 일들이라 굳이 밖으로 돌지 않아도 즐겁거든. 커피를 내리거나, 빵을 굽고, 요리를 해. 심지어 운동도 그냥 아파트에 딸린 헬스장에서 가볍게 하는 정도이고, 동그란 걸 가지고 하는 스포츠를 전혀 즐기지 않아. 햇빛 보는 것도 즐기지 않고, 친구들이 골프를 그렇게 배우라고 해도 전혀 매력이 느껴지지 않더라고.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난 이게 행복해.
4. 난 술을 하지 않아. 젊을 땐 고래였어 술고래. 일주일이면 8번은 술을 마셨는데, 나이가 들고 아내를 만난 뒤론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아. 업무상 회식이 있을 때나 한두 잔 마시는 정도? 가끔 저녁으로 술안주거리를 만들어 먹거나 시켜 먹어도 술은 안 마시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술로 인한 싸움도 없고, 갈등도 없어. 뭐, 그깟 술. 그리고 더 술을 멀리하게 된 것은 술을 마시고 들오면 코코가 이미 잠을 자고 있는 경우가 많단 거야. 그렇게 되면 코코를 못 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거든. 술보단 코코가 훨씬 좋은 소아과아빠는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아.
5. 운동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평생 공부만 하던 사람이지만 타고난 몸이 강골이라 힘이 세. 그래서 보통 아기들보다 훨씬 무겁고 활동적인데, 날 닮아 힘까지 센 아기를 키우면서도 체력적인 부담이 적어. 아기를 키우다 보면 힘을 써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더라고. 게다가 생후 6개월에 10킬로를 넘겨버린 육중한 아기를 키우는 아빠라면 더더욱 그런 일은 많이 생기게 되더라. 그래도 아직은 거뜬하니까.
6. 난 오랜 시간을 아빠가 되는 꿈을 꾸며, 많이 공부하고 많이 고민하고 많이 경험한 소아과의사라, 아기가 어떤 상황이라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무던하게 대처할 수 있어. 열이 나든, 아파서 울든, 변비가 생기든, 발달에 따른 원더 윅스나 분리불안, 독립수면에 대한 생각, 이유식에 대한 철학 등등 모든 것이 준비가 되어 있었어. 다만 아기가 조금 늦게 오는 바람에 이제야 실전에 적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아기가 잘 크고 있는 것 같아.
7. 걱정이 많고 계획하기를 좋아하는 성격도 육아 최적화 인간의 장점 중 하나야. 미리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걱정하고, 해결을 위한 준비를 해두는 것이 육아에서는 아주 좋더라고,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적절한 준비가 되어있는 것은 아내의 철저한 준비와 내 걱정의 컬래버레이션이었을 거야.
그래서 그런가 난 육아가 참 체질이야. 아빠가 되려고 지금까지 달려온 내 삶이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