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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과아빠 Apr 08. 2024

육아, 얻은 것과 잃은 것.

무엇을 잃어버리셨나요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될 줄 알지만 한번쯤 해야 하는 이야기 일 것 같았어.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것. 아기가 있어 너무 좋지만, 내 인생이 사라진 것 같다는 느낌. '나'는 사라지고 누구의 '아빠' 혹은 '엄마'가 되어버리는 것.


 아기가 생기기 전에 내 삶을 생각해 보면, 참 좋았어. 퇴근하고 항상 멋진 음식을 만들고 맛있게 먹어주는 아내와 하루동안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고. 그때그때 유행하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챙겨보고 같이 씻고 함께 잠드는 평범한 하루들. 오프나 주말이면 아내와 먹을 브런치를 만들고 느지막이 깨어난 아내와 함께 천천히 단장을 하고 근교로 나가는 짧은 카페 탐방, 대형 마트에서 1주일 만들어 먹을 식재료 쇼핑, 다이소에서 하는 플렉스, 국밥 데이트 같은 소소한 행복들이 많이 있었어. 숨을 쉬듯 당연하게 누렸던 행복들 말이야.


 하지만 아기가 생기고 모든 것이 변했어. 퇴근하면 아기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쉴 틈 없이 무엇인가를 하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 되어버렸고. 오프도 주말도 그저 아기와 함께 하는 '육아'만 남아있는 것 같았지. 브런치는 고사하고 배달음식이 식단을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꽃단장하고 나가는 카페 데이트는 고사하고 동네 스타벅스 가는 것도 힘들어졌어. 마트는 쿠팡이 대신했고, 다이소 역시 쫓기듯 구경하게 되고. 국밥은 한 동안 너무나 먼 이야기였어. 그렇게 생각하니 소소한 행복들은 하나도 곁에 남아있지 않더라.


 그런데 말이야. 행복은 항상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 주변에 숨어 있다는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어. 내가 육아를 시작하기 전에 누리던 행복들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내 곁에 있었어. 분유만 타줘도 너무나 행복하게 웃어주는 녀석이 있고, 조금 키웠더니 이젠 내가 해준 이유식을 한 사발씩 먹어주고, 쇠질은 아니지만 아기를 안아주고 번쩍번쩍 들어 올려주면, 꺄악 하고 소리 지르며 좋아하고 이두근 삼두근에 자극도 맛있게 오고. 오프에 먼 곳에 나갈 수는 없지만 동네 스벅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동안 유모차에서 낮잠을 자는 아기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고, 아침마다 쌓여있는 새벽 배송 상자들을 열어보는 설렘도 생겼어. 아기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니 몰래 밤에 나가 국밥 한 그릇 먹고 오는 숨 막히는 데이트도 해볼 수 있고.


 육아가 모든 것을 바꾸긴 해. 그게 전부 긍정적인 변화는 아닐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말이야 조금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면 아기가 없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행복들이 우리 생활 곳곳에 숨겨져 있을 거야. 그저 아기 때문에 못하는 것, 힘든 것, 사라져 버린 것들, 잃어버린 것들만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육아에 빼앗긴 사람이 되어버려. 이렇게 축복이고 이렇게 행복인 우리 아기를 두고 말이야.


 엄마, 그리고 아빠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할 수 있어. 아기와 함께 온 일상의 큰 변화들을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말고,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는 행복들을 찾으며, 너무 힘들지 않게, 불행하지 않은 육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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