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들은 경고
지난주 새벽, 샘 알트먼의 팟캐스트를 듣다가 손을 멈췄다. "AI는 멈추지 않고 무한히 발전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어폰을 뺐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내가 지난 몇 년간 해온 일들이 주르르 스쳐 지나갔다.
국가연구개발사업 기획서를 검토하고, 평가회의에 참석하고, 성과보고서를 읽는다. 그 사이사이 ChatGPT로 초안을 쓰고, 클로드로 자료를 요약하고, 미드저니로 발표 자료를 꾸민다. AI 도구는 쓴다. 그런데 내가 던지는 질문은, 10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이 과제의 목표 달성도는 몇 퍼센트입니까?"
"논문은 몇 편 나왔습니까?"
"특허는 몇 건 출원했습니까?"
도구만 바뀌었다. 엑셀 대신 대시보드를 보고, 이메일 대신 슬랙을 쓰고, 보고서 대신 AI가 만든 요약본을 읽는다. 하지만 내가 보려는 것은 여전히 숫자였다. 명확하고, 계량 가능하고, 비교 가능한 숫자.
알트먼의 말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어느 연구책임자를 만났다. 그는 5년간 진행한 과제가 '목표 달성도 82%'로 평가받았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만든 기술, 중국에선 3년 전에 이미 상용화됐더라고요. 국내 기업들은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고요. 그런데 저는 계획서대로 했으니까 '양호' 판정 받았어요."
그가 실패한 걸까? 아니다. 시스템이 잘못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계획대로 했는가?"라는 질문. 그 질문에 성실히 답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다. "이게 지금 의미가 있는가?"
그날 밤, 나는 지난 3년간 검토한 수백 건의 과제 자료를 훑어봤다. AI에게 물었다. "이 과제들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30초 만에 AI는 내가 3년 동안 보지 못한 패턴을 보여줬다. 서로 다른 부처에서, 서로 다른 연구팀이, 거의 같은 문제를 다른 이름으로 풀고 있었다. 예산은 각각 집행됐지만, 시너지는 전혀 없었다.
나는 도구를 잘못 쓰고 있었다. AI에게 보고서 초안을 쓰라고 시켰어야 했던 게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달라고 물었어야 했다.
알트먼이 말한 '같은 방식'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질문의 방식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20세기의 질문을 21세기에 던지고 있었다.
20세기 산업사회는 명확했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고, 실행하고, 평가한다. 변수는 최소화하고, 리스크는 관리하고, 계획대로 가는 게 성공이다. PMP 방법론의 세계. 내가 자격증을 따고, 강의하고, 현장에 적용했던 바로 그 방식.
하지만 AI 시대의 혁신은 다르게 작동한다. 계획보다 적응이 중요하고, 통제보다 연결이 중요하고, 목표 달성보다 의미 발견이 중요하다. Agile이 말하는 세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험을 장려하고, 과정에서 배우는 것.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AI에게 PMP식 질문을 던진다. "계획서 형식에 맞춰서 써줘." "보고서를 요약해줘." "이 데이터로 그래프 만들어줘." AI는 시키는 대로 한다. 빠르고 정확하게. 하지만 그게 다다.
진짜 질문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
"이 100개 과제가 만들어낸 생태계는 어떤 모습일까?"
"5년간의 실패 사례에서 어떤 공통 패턴이 보일까?"
"현장의 목소리와 연구자의 제안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을까?"
이런 질문은 도구 매뉴얼에 없다. 경험에서 나온다. 현장을 오래 봤고, 실패를 여러 번 겪었고, 시스템의 한계를 체감한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얼마 전 한 후배가 물었다. "AI가 다 하는데, 우리는 뭘 해야 하나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AI가 못 하는 걸 해야지. 왜 그걸 해야 하는지 아는 것."
모두가 같은 도구를 쓴다. ChatGPT, 클로드, 미드저니, 런웨이. 기업의 전략팀도 쓰고, 대학생도 쓰고, 프리랜서도 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결과물은 압도적이다. 어떤 사람의 것은 그저 그렇다. 차이는 뭘까.
도구가 아니다. 설계다. 프롬프트가 아니다. 컨텍스트다. 명령어가 아니다. 세계관이다.
나는 기계공학 박사고, PMP 자격자고, Agile 전문가다. 자격증도 많고, 논문도 썼고, 강의도 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운 것들. 실패한 과제를 분석하며 깨달은 것들. 연구자들의 고민을 들으며 이해한 것들.
그것들이 내가 AI에게 던지는 질문을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이, AI로부터 나오는 답의 질을 결정한다.
알트먼의 경고는 사실 초대였다. "같은 방식으로 일하지 말라"는 것. 도구를 배우는 데 시간을 쓰지 말고, 질문을 바꾸는 데 시간을 쓰라는 것.
국가 R&D 관리도 마찬가지다. AI는 더 효율적인 감시 시스템이 되거나, 더 창의적인 연결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이 과제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가?" vs "이 과제가 만들어낸 예상치 못한 가치는 무엇인가?"
"규정을 잘 지켰는가?" vs "이 생태계에서 어떤 새로운 연결이 가능한가?"
"목표를 달성했는가?" vs "우리가 놓치고 있는 기회는 무엇인가?"
전자는 통제의 질문이다. 후자는 촉진의 질문이다. 같은 데이터, 같은 AI, 하지만 완전히 다른 미래.
새벽 팟캐스트를 듣고 며칠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일을 한다. 기획서를 검토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보고서를 쓴다. AI 도구도 여전히 쓴다. 하지만 내가 던지는 질문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어제는 평가회의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 과제의 목표 달성도 말고요, 이 과제가 연결시킨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누군가 말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협업 이야기, 우연히 만난 산업계 파트너, 계획에 없던 파급효과들.
숫자로는 안 보이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성과였다.
기술은 계속 진화한다. 내일 또 새로운 AI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질문이 왜 중요한지, 이 답이 누구에게 의미가 있는지 아는 것.
알트먼은 옳았다. 기술은 질주한다. 하지만 통찰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그 통찰은, 같은 방식을 멈추는 순간 시작된다.
오늘도 나는 AI에게 묻는다. 이번엔 다른 질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