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할머니가 되자.
지난 토요일은 경애하는 한 사람의 생일이었다.
야생고양처럼 인간을 경계하는 내가 따르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올해 100살이 되었고, 한국에서 터덜터덜 빈손으로 건너온 손자며느리인 나에게 자신이 아끼던 자동차를 물려주었으며, 매달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를 구독하고, 취미는 1,000피스 퍼즐이다.
젊은 시절에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었으며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엄청난 발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여섯 명의 자녀가 있고 그 자녀의 자녀의 자녀들까지 합치면 70명쯤 되는 가족의 대장이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 루 헤이즈.
나의 시할머니다.
내 주변엔 백 살이 된 어른이 존재한 적이 없었으므로, 메리 루 할머니는 유니콘처럼 신비롭고 소중한 존재다.
“나도 이제 100살이니 내 맘대로 살 거야”라는 할머니의 말에는 지난 슬픔과 고난에 대한 미련 없이 지금의 인생을 충만하게 즐기겠다는 긍지가 함축되어 있어서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럼요, 할머니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라고.
과거의 비극을 붙잡고 “아이고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 푸념하며 주변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주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희생하며 주변을 돌보고 조용히 살아가는 할머니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할머니에 대한 그림책을 더 좋아한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염소들을 데려오며 “당신들 때문에 우리 염소들이 놀랬잖아!”라고 도리어 경찰관을 혼내는 <100마리의 염소와 할머니, 100 goats and granny!> 속 할머니는 언제나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당당하게 걷는다.
숲에 혼자 사는 <북부 숲의 소녀, North Woods Girl>에 나오는 할머니는 뜨개질하거나 쿠키를 굽는 대신 남편이 남긴 남성용 플란넬 셔츠를 입고 장화를 신고서 매일 숲 속으로 나간다.
그녀는 도시에 사는 딸의 집으로 가지 않고 스스로 숲길을 개척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할머니 갱단, The Great Granny Gang>에는 제목 그대로 동네 깡패들보다 더 강력하고 멋짐이 폭발하는 할머니들이 등장하는데…
작가 주디스 커가 여든아홉에 출간한 이 쿨한 할머니들에 관한 그림책에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일곱 명의 멋진 할머니가 등장한다.
모두 메리 루 할머니와 어딘가 닮아있어서, 이들은 분명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 갱단, The Great Granny Gang>에서 가장 어린 할머니는 82세다.
핑크색 헬맷을 쓰고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서 굴뚝을 고치는 메그 할머니,
빨간 하이힐과 꽃모자를 쓰고 차를 고치는 모린할머니,
열기구를 타고 동네를 순찰하는 존스 할머니,
사자조차 순한 강아지처럼 조련하는 매지할머니,
우아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공압 드릴로 도로공사를 하는 모드 할머니처럼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할머니들과는 어딘가 좀 다르다.
그들은 연약하고 보호해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능력 있고 힘을 갖춘 여성들인 것이다.
각자의 개성과 지혜를 모아 오히려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는 든든한 할머니 갱단에 나도 들어가고 싶어 질 정도다.
자격요건은 아마 튼튼한 체력과 용기, 호기심과 배우려는 자세, 자신을 건사하고 주변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지 않을까?
나보다 더 오래 살아 본 어른이 갖고 있는 여유, 그래도 버티고 살아보니 살만하더라는 삶에 대한 낙관적인 확신은 커다란 나무 같은 안정감을 준다.
요즘 나는 선우용녀 할머니의 유튜브를 보며 아침마다 호텔 뷔페에 가는 상상을 한다.
그러려면 음식을 잘 소화할 수 있는 튼튼한 위장과 비용을 지불할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겠지.
밀라논나처럼 우아한 할머니도 좋겠고, 윤여정처럼 자신의 일을 오랫동안 묵묵히 해낸 능력 있는 할머니도 좋겠다.
나이 드는 것이 초라하고 슬픈 일은 아니란다, 할머니에겐 할머니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즐거움이 있어,라고 알려주는 할머니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노년을 기대하고 준비하도록 격려하는 든든하고 멋진 할머니들 말이다.
우리가 여든두 살이 되면 나와 같이 할머니 갱단에 들어가지 않을래?
지금부터 운동하고 기술을 닦아놓자.
<할머니 관련 영어그림책 목록>
<The Great Granny Gang, Judith Kerr>
<Leave Me Alone!, Vera Brosgol>
<North Woods Girl, Aimee Bissonette>
<100 Goats and Granny!, Atinuke>
<I Know a Lady, Charlotte Zolotow>
<Miss Rumphius>
<Nana in the City, Lauren Castillo>
<Superhero Gran, Timothy Knap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