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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이름을 알아간다는 것

공룡을 사랑하는 너를 사랑해

by 오모

아이가 앞장서는 그림책의 선명한 즐거움을 따라가다 보면 특별영역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를테면 공룡영역, 중장비영역, 유니콘영역…


교육부의 교과과정에는 없지만 아이들이 나중에 진짜 공부를 시작해야 할 때 필요한 공부정서, 동기부여, 상상력, 창의력, 배경지식을 풍요롭게 채워주는 중요한 성장의 과정들이다.

궁금한 것을 책에서 직접 찾아보고 더 깊이 알아가는 성취감과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 시험지의 정해진 답을 외워서 100점을 맞는 것보다 중요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입니다만.)


아이를 향한 나의 애정은 시시각각 변하는 관심사를 살뜰히 캐치해서 함께 탐구하고 응원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공룡이름을 공부하고 알아가는 것은 애정표현의 방식인 것이다.


안킬로사우르스를 사랑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네가 좋아하는걸 함께 하기 위해서 엄마도 노력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 집 공룡시대는 아이가 2살이 되던 해에 시작된다.

어째서 아이들은 거대하고 신비롭고 무시무시한 공룡에 매혹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아이가 공룡을 좋아하게 되었으니 나도 그 여정을 함께해야 했다.


도서관에서 공룡그림책을 찾고 공룡 장난감으로 역할놀이를 하고 공룡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생물체에 대해 상상하고 탐구하는 과정은 즐거웠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미국 도서관에는 공룡 마니아들이 어찌나 많은지 아예 공룡책 섹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파도 파도 새롭게 나오는 공룡분야 아동도서의 방대한 양에 감탄한다.


공룡책은 (사전류를 제외하면) 재밌다.

사라진 존재에 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흥미롭고 기발했다.

공룡들은 어떤 차를 타고 다닐지,

공룡을 반려동물로 키우면 어떨지,

아이는 그림책이라는 파도를 타고 상상의 바다를 항해했다.


문제는 공룡 학명이다.

더 정확히는 공룡의 학명을 영어로 읽어내는 것.

그건 약간의 연습과 암기력이 요구되었다.

비장하게 노트를 들고 주방 테이블에 앉아 영어단어를 읊조리는 나에게 남편은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었고 ‘공룡이름’이라는 짧은 대답을 듣고서 의아해했다. 뭘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공룡이 등장하는 영어그림책에는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조차 까마득한 학명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공룡시대 4년 차를 맞이한 지금은 단단한 머리뼈로 박치기하는 Pachycephalosaurus(파키케팔로 사우루스),

볏에서 트롬본 같은 소리를 내는 Parasaurolophus (파라사우롤로푸스)와 같은 공룡 학명을 마치 친밀한 친구의 이름을 부르듯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호기심만큼 나의 세계도 조금씩 넓어진다.


우리는 부지런히 공룡을 따라다녔다.

가장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티라노사우스 수(Sue)의 화석표본을 보러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에 다녀오고 공룡쿠키를 구웠으며 공룡 코스튬을 입고서 동네를 돌아다녔다.

내가 키우는 게 사람인지 공룡인지 싶을 정도로 공룡에 심취해 있던 시절이었다.

아이의 몰입과 성장을 가까이 지켜보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내가 무언가에 저렇게 열중하고 빠져있던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세상만사에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하던 나의 세계는 좁고 어두웠으며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공룡에 대해 나름의 공부를 하면서 무언가를 알아가는 것이 이토록 설레고 즐거운 수 있다는 기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는 어려운 학명을 따라 말하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특별히 좋아하는 공룡 페이지에 인덱스 스티커를 붙이며 공룡 백과사전을 갖고 놀았다.

내적 동기는 스스로 배우게 한다.

나의 아기공룡

그런 연유로 아이는 한글과 파닉스대신 공룡 이름을 외웠고 공룡뼈를 찾기 위해 호숫가 해변에서 땅을 파며 시간을 보냈다.

공룡에 대한 궁금증은 그들을 멸종시킨 소행성 충돌과 화산폭발에 가닿아 우주, 지질의 세계로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그 미세한 내적동기의 연결고리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것은 바로 책.

아이의 호기심과 관심분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오가닉 한 형태의 책육아를 지향하는 까닭이다.

배움의 씨앗이 건강하게 자라는 영양분은 아이가 가진 자기 주도성과 호기심, 내적 동기가 아닐까.


조기교육과 강제적인 학습은 동기부여를 해줄 수 없다.




요즘 아이의 호기심 나침반은 공구와 스페인어, 동물 스케치를 향하고 있다.

작은 손으로 망치와 못을 들고서 나무판자를 덧대어 새 모이상자를 만들고, 스페인어 숫자를 암송하며 노트에 낙타를 선 하나로 그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덕분에 나도 덩달아 스페인어로 숫자 10까지 셀 줄 알게 되었고 못이 휘어지지 않게 망치질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이모와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한국어 연습도 열심이다.

아마 ‘사랑’은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아닐까.

내 배움의 동기부여가 ‘아이가 사랑하는 것을 응원하고 함께한다’인 것처럼.



<공룡 영어그림책 목록>

<What Kind of Car Does a T. Rex Drive?, Mark Lee>


<Saturday Night at the Dinosaur Stomp, Carol Diggory Shields>


<If You Happen to Have a Dinosaur, Linda Bailey>


<Dino Pets, Lynn Plourde>


<Kitties on Dinosaurs, Michael Slack>


<Party Rex, Molly Idle>


<Crunch the Shy Dinosaur, Cirocco Dunlap>


<The girl and the dinosaur, Hollie Hughes>


<Sinclair, the Velociraptor Who Thought He Was a Chicken, Douglas Rees>


<A Dinosaur's Day: Triceratops Follows Its Herd>


<Edwina, the Dinosaur Who Didn't Know She Was Extinct, Mo Willems>


<Romeosaurus and Juliet Rex, Mo O'Hara>


<Theo TheSaurus: The Dinosaur Who Loved Big Words, Shelli R. Johannes>


<There's a Diplodocus at the Door, Ruth Symons>


<Buying, Training, and Caring for Your Dinosaur>


<You Can't Be a Pterodactyl!, James Breakwell>


<The Berenstain Bears' Dinosaur Dig, Jan& Mike Berenstain>


<10 Things I Love About Dinosaurs>


<Dinosaur Farm!, Penny Dale>


<Dinosaurs Are Different (Let's-Read-and-Find-Out Science 2)>


<Jurassic Bark!>


<We Are the Dinosaurs>


<Hiding Dinosaurs, Dan Moynihan>


<The Lost Dinosaur Bone (Little Critter)>


<Danny and the Dinosaur, Syd H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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