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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읽는 그림책

애착을 단단하게 해주는 잠자리 동화들

by 오모


집중력을 도둑맞고 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 집중력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의 집처럼 수시로 폭풍에 휘말렸다.

빨래의 왕국에서 저녁메뉴의 왕국으로, 아이 학교 이메일의 왕국에서 SNS 속 누가 누가 잘 사나 자랑하기 대회로 이리저리 휘말려 다니다 보면 어느새 저녁 8시.

아이를 씻기고 어르고 달래어 침대에 눕히고 나면 비로소 온전한 물리적, 정신적 공간이 생겨났다.

잠자리 동화 시간만큼은 꼭 지키는 이유다.

은은한 조명아래 포근한 이불을 덮고 책 읽는 시간을 채우는 온기와 애착은 고스란히 아이의 것.

미래의 걱정거리와 불안을 붙드는 대신 용기와 사랑을 말하는 그림책을 펴고 무탈 없이 보낸 하루에 감사하며 잠들 수 있다.

밤에 읽는 그림책들은 아이와 엄마가 지금 이 순간 함께 존재하도록 돕는다.

충만한 애착의 페이지들이 모여서 지어진 단단한 정서적 집은 어떤 폭풍이 와도 끄떡없을 것이다.



마가렛 와이즈 브라운의 <잘 자요 달님, Goodnight Moon>은 일상의 폭풍에 휘말려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정신과 집중력, 평온함을 되찾아 오기에 더없이 좋은 그림책이다.

1947년 출간된 이후 약 4천만 부가 팔렸으며 25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아니 얼마나 재밌길래 이렇게 유명할까 싶어서 이 책을 덥석 구매한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러나 이 책이 데려가는 곳은 마법 같은 판타지 세계가 아닌 일상을 돌보는 방, 현실세계이다.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서 두발을 단단히 딛고 온전히 머물러야 하는 곳은 미래나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멋진 용어로 현존이라고 부른다.

아기토끼와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다 보면 어느새 모든 감각들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낀다. 창문틈으로 들어오는 달빛, 밤공기의 촉촉한 냄새,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숨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잘 자요 달님, Goodnight Moon>의 또 다른 매력은 그림작가 클레멘트 허드의 강렬한 색채와 초록색 방안의 요소들이다.

형광빛이 도는 일렉트릭 그린, 오렌지, 노랑으로 힘차게 시작되는 방안의 색감은 페이지를 넘김에 따라 깊은 밤처럼 어두워진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탁상시계의 긴 바늘, 달의 움직임, 요리조리 돌아다니는 작은 생쥐와 아기고양이들을 찾아내는 것도 즐겁다.

불안과 걱정은 형태가 없지만 일상 속 물건들은 형태가 분명하다.

내 곁에서 씩씩하게 그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밤동안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에는 애정이 들어있다.


우리를 토닥토닥 재워주는 것은 그런 사랑의 마음들이다.




밤에 읽는 또 다른 그림책들은 <Guess How Much I Love You>, <Hush Little Baby>와 같이 부모의 사랑을 표현하는 책들이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만큼 아이들에게 안정을 주는 건 없을 테니까.

실비아 롱(Sylvia Long)은 자본주의적 색채가 짙게 풍기는 미국의 전통 자장가 <Hush, Little Baby>를 자연친화적으로 재해석해서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이 자장가의 원래 가사에서는 엄마가 아이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금반지를 사줄게’, ‘마차를 사줄게’처럼 상업적이고 물질적인 보상을 추구하지만, 실비아 롱은 이 부분을 ‘반딧불이를 잡아줄게’, ‘별을 같이 볼게’ , ‘그림책을 읽어줄게’처럼 자연과 감정적 보상으로 바꿔놓았다.

지금도 나는 아이의 느긋한 속도에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표지가 닳아진 이 책을 들고 나긋나긋 자장가를 부른다.

낮에는 바빠서 아이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하늘의 별만큼 쏟아주고 잘 자라고 인사하며.


밤은 하루 동안 쌓인 피로와 낙담을 그러모아 사랑의 언어로 곱게 매만져 내일의 희망으로 다져내는 시간이다.



<밤에 읽는 그림책 목록>

<잘 자요 달님, Goodnight Moon/ Margaret Wise Brown>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Guess How Much I Love You/ Sam McBratney>


<Hush Little Baby/ Sylvia Long>


<Good Night, Dinosaurs, Judy Sierra>


<Husherbye/John Burningham>


<The Yawnicorn/Emily Hamilton>


<Sweet Dreams, Pout-Pout Fish>


<Sleepy ABC Board, Margaret Wise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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