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절은 위험하단다.
시댁 뒷마당에서 은방울 꽃을 꺾어와 책상 위에 꽂아두었다.
새하얀 종 모양의 꽃잎에 코를 대고 킁킁 향기를 맡을 때 느껴지는 서늘한 고혹함.
이 아름다운 꽃은 독성을 갖고 있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를 위험에서 배재하는 대신 안전한 노출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 작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우릴 죽일 수도 있어.
그러니 조심하렴.
위험한 얼굴을 한 위험은 쉽게 피할 수 있지만 대체로 진짜 위험은 미소를 띤 채 친절한 얼굴로 다가온다.
그리고 자주 ‘위험’으로 오해받는 ‘다름’도 있지 않은가.
여기 위험과 다름의 경계를 아이들의 언어로 알려주는 완벽한 그림책이 있다.
나는 아이와 나란히 책상에 앉아 은방울꽃 향기를 맡으며 크리스티 맨딘의 그림책 <Millie Fleur's Poison Garden, 밀리 플뢰르의 포이즌 가든>을 읽기 시작했다.
모든 집과 정원이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어진 ‘가든 글렌’ 마을의 구석진 언덕 위에는 혼자만 덩그러니 다르게 생긴, 다 쓰러져가는 빈집이 하나 있다.
그곳에 새로 이사 온 가족은 밀리 플뢰르라는 소녀와 그녀의 엄마다.
프랑스어로 천송이의 꽃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녀는 이름만큼이나 식물을 좋아해서 새로운 집에 도착하자마자 씨앗을 심어 정원을 가꾸었다.
그런데 이 정원의 식물들은 어딘가 좀 이상하다.
뾰족한 송곳니와 눈, 코, 입을 가진 식물 앞에는 <이빨요정 이끼>, <촉수 달린 쑥국화>, <투덜이 제비꽃>같이 해괴한 이름표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의 정원 관리 위원회에서는 즉시 불만을 표하며 이 이상하고 위험한 정원을 철거하도록 요구했다.
이들에게 ‘다름’은 험한 것, 곧 ‘위험’인 것이다.
심지어 밀리의 정원을 <독초 정원>이라고 불렀는데, 이 당찬 소녀는 “내 식물들은 독성이 없어요! 당신들이 키우는 식물과 모양이 다를 뿐이라고요”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아마 소심한 나라면 주눅이 든 채로 정원 앞부분에는 장미넝쿨을 심고 뒷부분은 이상한 식물을 자그맣게 키웠을 것 같다.
타인이나 사회의 압박에는 취약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포기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살아가는 타입의 인간이니까.
밀리도 그저 어린아이 일 뿐이라 흔들린다.
“여기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미 같은걸 몇 개 심어볼까 봐...”라고 고민하는 밀리에게 그녀의 엄마는 “그게 널 행복하게 한다면”이라는 간명한 조언을 남긴다.
장미는 밀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기에 대신 새로운 정원 협회를 만들었다.
이름은 보란 듯이 <독초 정원 협회>.
사회에 인정받기 위해 억지로 본성을 바꾸지 않고,
그들과 맞서서 싸우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걸 당당하게 지속할 용기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그녀에게는 있는 것이다.
독초 정원에 놀러 오라는 초대장을 돌리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사랑하는 괴이한 식물들을 소개해 주었다.
독성은 없지만 이빨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와 함께.
어린이들은 호기심에 의해 움직이는 생물이라서 고정관념이나 사회의 암묵적 지시를 따르는 대신 궁금함과 즐거움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렇게 마을은 통제와 완벽성향에서 벗어나 각자의 다름과 개성을 존중하는 마을로 변화되었다는 이 특별한 그림책은 실제로 영국에 있는 독초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써졌다.
영화 해리포터의 외부 촬영지로 사용되었던 영국의 오래된 안윅캐슬 안에는 100여 가지의 독초들만 모아놓은 <The Poison Garden>이 있다.
마치 마법사들이 초록색 마법의 물약을 만들 때 사용 할 것 같은 신비롭고 위험한 식물들이 그곳에 모여있는 것이다.
정원 입구에서 위험과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교차된 뼈 문양이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이 정원은 아름다운 식물에 숨겨진 독성의 위험성을 교육하고, 이 독성을 잘 활용하여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알리고자 만들어졌다.
가이드 없이 단독으로는 관람이 불가하며 정원사들은 모두 전신 보호복과 마스크, 장갑을 착용한 채 식물들을 돌본다.
한없이 순하고 여리해 보이는 독성식물에 피부가 닿으면 화상이나 물집을 일으킬 수 있고, 독성 증기를 방출하여 호흡기를 자극하는 식물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양면성에 매료되었다.
착하고 물러보이는 사람이 내면에 갖고 있는 강인함을 떠올렸고, 상냥하게 다가와 도움을 주는 척하면서 할머니와 빨간 모자를 잡아먹은 늑대를 떠올렸다.
부디 아이가 배려와 호의, 위험과 통제사이에 존재하는 희미한 경계를 알아차릴 수 있길 바란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자신의 촉을 의심하지 않고 재빨리 도망갈 수 있도록.
세상에는 아름답고 안락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 숨겨진 위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이비종교나 가스라이팅 모두 인간의 심리적 약점과 결핍을 먼저 채워주고 서서히 지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얼핏 따뜻한 보살핌과 공감, 이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신적,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만든 뒤 죄책감, 자기 비하, 두려움을 심어주는 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Millie Fleur's Poison Garden, 밀리 플뢰르의 포이즌 가든>처럼 당당하게, 당신의 인정과 배려는 필요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 고 외치는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읽는다.
마일리 사이러스의 노래 <플라워>의 가사처럼 내가 날 위해 꽃을 살 수 있고, 나 자신의 손을 잡아줄 수 있으며 스스로에게 사랑을 듬뿍 주면서 살아가길 바라며.
다름은 위험이 될 수 없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친절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다름에 관한 영어그림책>
<Millie Fleur's Poison Garden, Christy Mandin>
<Odd Dog Out, Rob Biddulph>
<It's Okay To Be Different, Todd Parr>
<Ursula Upside Down, Corey R. Tab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