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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미워하지만 너는 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그림책 속 자아존중감

by 오모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고 한심한 인간이 누구지?”

“... 저요”


내가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의 거울이라면 분명 이런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갖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샤넬백도 아니요,

백설공주처럼 아름다운 외모도 아닌 ‘자아를 긍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없는가”는 내 인생의 어렵고도 중요한 난제 중 하나다.

이걸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이에게 이 못난 문제들을 대물림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마음 한편에 그림자처럼 놓여있었다.


육아란 부모의 결핍을 투영하는 것이라서 나의 결핍은 그림책으로 여실하게 드러난다.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책들, 아이에게 열성을 다해 읽어주는 그림책들은 모두 ‘자아존중감’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미워하지만 너는 너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매일 밤 아이를 끌어안고 그림책을 읽어준다.

그림책은 언제나 마음속 난제를 풀어갈 실마리를 알고 있어서, 인상 좋은 할머니가 아이손에 사탕을 쥐어주듯 살며시, 다감하고 따뜻하게 문제의 해법을 알려주었다.

그림책 할머니에게 받은 사탕 맛을 설명해 보자면,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부지런히 찾아 계속하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런 맛이었다.


외부의 평가와 타인의 성과에 고정되어 있던 기준을 내면과 내 감정상태로 옮기고 SNS 속 완벽한 사람들과의 비교를 멈추라는 해법으로 결론은 내려졌다.


소셜미디어는 보이지도 않는데 이길 수도 없는 게임을 구현한 완벽한 소우주다.
마음의 평화를 모조리 잃어버리기에 딱 좋은 곳이다.
<과부하 인간, 제이미 배런>


소셜미디어에 나오는 ‘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육아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며 심지어 ‘자기 관리도’ 잘하는 완벽한 엄마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나 자신이 미워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와 공원으로 달려간다.

나무 밑에 앉아 꽃향기를 맡으며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는 커다란 황소를 떠올리면서.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 <The Story of Ferdinand>에 나오는 덩치 큰 소는 외모와는 달리 여리고 섬세한 내면을 갖고 있다.

1936년, 유럽 전체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에 출간된 이 책은 폭력과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내용으로 나치 독일에서는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나는 주변상황에 휘둘리거나 동조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그 황소가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투우경기에 나가 싸워서 승리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아닌, 조용히 꽃향기를 맡으며 어슬렁거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른다.

외부의 기대와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이 편안한 방향,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고요하게 살아간다.


내 마음이 가장 평온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역시 아이와 조용하게 그림책을 읽는 시간, 강아지와 숲길을 산책하는 그런 고요한 순간들인데 어째서 나는 더 많이 인정받고, 자랑하고, 빛나는 성공을 쟁취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던 걸까.

오래된 차가 무슨 상관이람, 그런 마음도 들었다.

나는 미국에 와서 시할머니가 물려주신 20년도 훨씬 넘은 도요타 캠리를 타고 다녔는데 마치 그 낡은 차가 나의 가치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하던 시기였다.

사람들이 내 차를 보고 나의 비루한 재정상태를 평가하는 건 아닐까 의기소침해졌고, 나만 빼고 모두들 번쩍번쩍한 신형 SUV를 타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멀쩡한 차를 놔두고 할부로 새 차를 살만큼 배짱이 두둑하지도 못했기에 불만을 쏟아내며 캠리를 타고 다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와 아이를 도서관에, 숲이 있는 공원에, 호숫가에 안전하게 데려다준 건 할머니가 주신 낡은 자동차다.

느긋하고 듬직한 황소와 어딘가 닮아있는 나의 오래된 캠리.

내가 스스로의 취향과 행복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동안 주변의 물건들도 각자의 쓰임과 도움에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낯선 타인의 세계를 듣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속 말랑한 공간도 생겨났다.


자아존중감은 '내가 제일 잘났어'가 아닌 '내가 소중한 만큼 너도 소중해'에 더욱 가까운 감각이다.



며칠 전 “네 친구는 티오는 벌써 스페인어 책도 읽는다면서! 너도 스페인어 알파벳 연습해야 하는 거 아냐?”라며 함부로 타인과 비교하고 불안해하는 나에게 '내가 왜? 걔는 걔고 나는 나야’라는 아이의 쿨한 반응은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부디 이 얄팍한 엄마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자아존중감을 쌓아나가길.



<자아존중감 영어그림책 목록>

<The Story of Ferdinand, Munro Leaf>

<I Like Me!, Nancy L. Carlson>

<The Mud Fairy, Amy Young>

<A Bad Case of Stripes, David Shannon>

<Layla, the Last Black Unicorn, Tiffany Haddish>

<Avocado Asks, Momoko Abe>


<Vlad, the Fabulous Vampire, Flavia Z. Drago>


<The Little Engine That Could, Watty P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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