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없지만 노력은 있다.
프레디 머큐리가 읽어주는 그림책 <빈 화분, The Empty Pot>을 좋아한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라미 말렉이 읽어주는 그림책이다.
섹시한 라미 말렉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고,
텅 빈 화분을 끌어안고서 터벅터벅 걷는 소년의 모습은 마음에 맴돌았다.
나 역시 끝끝내 꽃을 피우지 못한 빈 화분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력이 늘 빛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결과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과정을 고요하게 축복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도 새싹이 돋아나지 않는 씨앗을 조용히 돌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으로 충분하다.
중국 왕조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 그림책은 “옛날옛날 중국에 꽃을 좋아하는 핑이라는 소년이 살았어요”로 시작된다.
그림에서 풍기는 동양적, 불교적 분위기와 색감으로 짐작했을 때 Demi라는 작가가 중국인이며 철학자일 것이라고 확신했지만(그렇다. 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그녀는 동양의 철학과 전통문화에 영감을 받아 작품활동을 하는 금발의 미국여성이라는 사실에 무색해졌다.
핑이 사는 마을의 꽃을 사랑하는 황제는 후계자를 뽑을 때도 꽃이 고르도록 하고 싶다는 낭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왕국의 모든 아이들에게 꽃씨를 하나씩 나눠주고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운 어린이가 왕좌를 물려받게 된다는 다소 즉흥적이고 주관적인 시책을 마련한다.
핑도 그 어린이들 중 한 명으로 황제에게 받아온 꽃씨를 정성스럽게 심고 돌보지만 어쩐지 새싹이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흙을 바꿔보고 커다란 화분에 옮겨 심어 보아도 새싹은 나오지 않았고, 씨앗 주위를 맴돌며 초조하게 텅 빈 화분을 바라보는 핑은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품을 들인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뿅 하고 화려한 꽃을 피워내길 바라는 성질 급한 나의 모습 말이다.
(물론 핑은 나와 다르게 침착하고 인내심 많은 어린이다.)
그렇게 긴 기다림 붙들고서 봄이 도착했다.
다른 어린이들은 각자 탐스럽게 피워낸 꽃이 담긴 화분을 들고 황제에게 달려가는 동안 핑은 텅 빈 화분을 보며 망연자실할 때 그의 아버지는 말한다.
“넌 최선을 다했잖니, 황제님에겐 그 최선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The Empty Pot>은 진실을 말하는 용기, 그리고 노력과 과정을 그 자체로 응원하는 이야기다.
핑은 황제에게 빈 화분을 보여주며 사실대로 말한다.
씨앗에 매일 물을 주고, 흙도 바꿔보고, 일 년 내내 돌봤지만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았기에 이렇게 빈 화분을 들고 왔다고. 그리고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그것은 실패자의 구차한 변명이 아닌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의 담백한 결과 보고에 가깝다.
핑은 앞으로도 꽃 씨앗을 심고 돌보며 기다리는 과정을 고요하게 즐길 테니까.
어떤 화려한 꽃을 피운 어린이가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는지는 직접 책을 펴서 확인했으면 좋겠다.
그림책에도 반전은 재미를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 스포는 하지 말아야지.
읽고 나면 끝내 푸릇한 새싹을 보여주지 않았던 빈 화분을 마주하는 일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도록 용기를 줄 것이다.
만약 멋진 꽃을 피워냈다면 짝짝짝, 참 잘했어요!
<Demi의 책들>
<The Empty Pot>
<The Shady Tree>
<The Conference of the Birds>
https://www.youtube.com/watch?v=a9K-sAKdk2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