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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우는 시간

고양이에겐 아홉 개의 목숨이, 인간에겐 혼자서 우는 시간이 있다.

by 오모

잰 브렛의 그림책 <Comet’s nine lives, 코멧의 9개 인생>은 8번 죽었다 살아나 9번째 인생을 살게 되는 떠돌이 고양이 코멧의 이야기다.

스토리상으론 ‘죽음의 여정’인 셈인데 그림책은 늘 ‘절망 편’을 ‘희망 편’으로 바꾸어 놓는 힘이 있으므로, ‘다시 살아나는 여정’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로 인해 책 리뷰란에는 무엇 때문에 이 가엾은 고양이를 8번이나 죽음으로 몰고 가느냐는 항의, 어린이에게 동물의 죽음이 너무 가벼운 일처럼 표현되었다는 염려가 이어졌다.


코멧의 계속되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아이는 이 그림책을 좋아한다.

어쨌든 이 씩씩한 고양이는 매번 훌훌 털어내고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나는 낙관주의자는 아니지만 현생에서는 도무지 낙관할 일들이 보이지 않으므로 그림책에서 만큼은 끝까지 낙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작가가 숨겨놓은 아주 작은 희망의 조각을 찾아 보물찾기 게임을 하는 사람처럼.

이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눈에 보이는걸 표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된다.

진실은 늘 깊숙한 곳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법이니까.




‘고양이의 목숨은 9개’라는 말이 고양이가 실제로 9번이나 죽고 살아다 난다는 의미가 아니듯, 그림책에서 코멧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보다는 자아를 상실하는 것과 같은 슬픔, 좌절, 실패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를 죽게 만든 건 결코 대단한 사건이나 재난이 아닌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들이었다.

정원에서 산책하다 독초를 따먹는다던지, 쌓여있는 책탑이 무너지면서 깔린다던지, 딸기 셰이크통에 빠진다던지 하는 그런 ‘별것 아닌’ 일들 말이다.

이런 일로 죽기까지 해?라고 의아해할 일들.

그러나 곰곰이 헤아려보면 내 내면을 판판이 조각냈던 일화들은 대부분 커다란 사건사고가 아니라 일상에서 겹겹이 쌓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사소한 일들이었다.

마음에 페어진 미세한 틈에 점차 균열이 생기고 마침내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며 감정과 자아의 일부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일련의 과정은 나에게 익숙한 패턴이다.

나에게 고양이처럼 아홉 개의 목숨이 붙어있는 건 아니지만 다행스럽게도 매번 훌훌 털고서, 때론 끙끙 앓아가며 다시 살아났다.

곁을 지켜주는 사랑하는 존재들의 힘으로.

다시 회복하고 살아내기로 결심하게 하는 존재들 말이다.




지금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가장 가까운 존재들에 대해 말해보자면 사랑하는 가족과 희망이 깃든 그림책, 그리고 종종 혼자서 우는 시간들이다.

내가 도움의 손만 뻗으면 사랑의 온기를 다정하게 내미는 가족, 그림책과는 다르게 눈물의 시간은 스스로 독려하여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가지런히 꺼내고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 적막 속에서 기억과 감정을 샅샅이 뒤진 다음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면서 분류, 폐기, 수선하는 과정을 거치며 나는 다시 살아난다.

반짝이는 희망의 조각을 찾아내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아끼는 장식품처럼 꺼내어 놓고, 과거의 후회, 미래의 불안을 바람처럼 흘려보내는 일은 창문을 활짝 열고 마음의 환기를 도모하는 일과도 같다.

어쩌면 인생이란 이런 것들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죽이고 살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길 위에서 사는 고양이들이겐 정말로 아홉 번의 씩씩한 행운과 목숨이 있으면 좋겠다.



<고양이 그림책 목록>

<Comet's Nine Lives, Jan Brett>


<Big Cat, Little Cat, Elisha Cooper>


<Ghost Cat, Kevan Atteberry>


<I Don't Know What to Call My Cat, Simon Philip>


<A Castle Full of Cats, Ruth Sanderson>


<Bruno, the Standing Cat>


<Kitten's First Full Moon, Kevin Henkes>

<Matilda's Cat, Emily Gravett>


<The Shy Little Kitten, Little Golden Books>


<This Little Kitty, Karen Obuhanych>


<The Kitten Who Thought He Was a Mouse>


<Pete the Cat: I Love My White Shoes>


<How to Give Your Cat a Bath: in Five Easy Steps>


<Lola Gets a Cat, Anna McQuinn>


<Itty-Bitty Kitty-Corn, Shannon 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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