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에 미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정말 죄송해요. 세아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는데. 제가 세아한테 물어볼께요. 저희도 하긴 할 건데 지금은 아니어서요. 죄송합니다.”
미연은 죄송하다는 말만 여러 번을 했다. 전화를 끊은 미연은 세아와 마주 보고 앉았다.
“세아야 너 소미한테 화장실 바꾼다고 했어?”
“어.”
“그런 말을 왜 했어?”
“그냥 했어.”
“소미 아빠가 전화가 왔어. 세아가 소미네 회사서 화장실 바꾼다고. 다음부터는 엄마한테 물어보고 말해.”
세아는 그냥 한 말이어서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미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식탁에 앉아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세아는 소미 아빠의 보트를 타지 못했다.
세아는 학교에 도착해서 가방을 계단 위에 있는 가방 놓는 곳에 놔두고 운동장을 뛰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운동장을 두 바퀴 뛰는 것이 매일 아침의 일이 되었다. 세아의 가방 앞주머니에 있는 돈 만 원이 없어졌다. 처음에는 집에서 안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매일 만원이 없어지는 것을 안 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운동장 옆에는 꽃이 많은 정원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뾰족한 철조망 같은 줄이 무릎 위 정도의 높이로 막혀있었다. 세아는 점심을 먹고 같은 반 친구들이 이곳에 간다고 해서 따라왔다.
“이걸 넘어서 정원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못 돌아올 수도 있어.”
낄낄대는 소리를 내며 도현이가 말했다. 도현이의 말에 경진이도 말을 거들었다.
“야, 넘어와 봐. 어떻게 되나 보게.”
도현과 경진은 줄을 넘어서 정원으로 들어갔다.
여자 아이들은 처음에는 눈치를 보다가 한 명씩 줄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세아 차례가 되자 아이들은 세아를 바라보았다.
“너 설마 무서워서 못 들오는 건 아니지?”
도현은 비아냥대듯이 말했다.
“인간들이란 역시 겁이 많아.”
도현은 경진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세아는 쇠줄의 높이가 높지 않아서 간단히 넘을 수 있었다. 세아는 반에서 키가 큰 편이었다. 갑자기 종소리가 울렸다.
“빨리 들어가자.”
세아는 친구들의 말에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가끔 몇몇 아이들이 수업에 늦게 들어오거나 오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함께 다니는 것 같았다.
세아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수업 시간에 교장실에 갔다. 가는 길에 같은 반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 무리가 이야기를 하며 건물 꼭대기층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 가는 길은 계단이 아니고 경사진 길이었다. 이 학교에는 계단보다는 경사진 길들이 많았다.
‘꼭대기 층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곳에는 아주 큰 그림만 있었다. 세아는 다시 교실로 갔다. 그 무리의 아이들은 항상 무리 지어서 다녔다. 세아는 그 아이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세아의 학교 생활은 생각보다 바빴다. 행사가 많았고 해야 할 숙제도 많았다. 매일 알림장 확인을 해야 했다. 미연은 회사 생활로 인해 세아를 챙기기 힘들었다. 야근이 있어서 세아의 가방조차 열어보지 못했다.
“세아. 세희. 세준아 엄마 늦었지? 엄마가 맛있는 거 사 왔어. 어서 가세요.”
돌봄 선생님이 가고 미연은 피자와 마감 세일 음식을 식탁에 놓았다.
“맛있겠지? 엄마는 요즘 피자가 먹고 싶어서. 지나가는데 피자 냄새가 나서 먹고 싶어서 사 왔어.”
세아와 세희는 피자를 좋아했다. 늦은 저녁이어서 배가 많이 고팠다. 미연은 평일에는 저녁 7시쯤 집에 도착했다.
“진짜 맛있겠다.”
세아와 세희는 허겁지겁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먹느라 세아는 알림장 확인하는 것을 잊었다. 미연도 오늘 업무가 많았어서 힘들었다. 세아의 아빠는 지금 출장 중이어서 퇴근 후에는 미연이 아이들을 혼자 봐야 했다.
“오늘은 학교 수첩을 검사하는 날이야.”
세아는 학교 수첩을 집에 놔두고 왔다.
“안 가져왔어요.”
저번에 리본을 안 해서 혼냈던 선생님이 세아에게 소리를 질렀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야. 알림장 확인 안 했니?”
그 선생님은 흥분하며 말했다. 담임선생님이 그를 막았다.
“처음 있는 일이니 한 번만 봐주세요.”
“담임선생님이 똑바로 해야지. 이러다가 선생님 다음 그 자리가 선생님 것이 안 될 수도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죠?”
“네...”
세아는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1학년 생활을 즐겁게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다. 세아의 1학년 담임선생님은 도방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
교장 선생님이 바뀌고 등교할 때 서 있던 무서운 선생님은 이제 문 앞에 없었다. 이제는 교복의 리본이나 준비물 때문에 밖에서 혼날 일은 없었다.
2학년이 되고 세아는 준비물을 사러 문방구에 갔다.
“안녕?”
“안녕?”
같은 반 성호였다. 성호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들고 있었다. 성호는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장난을 치지도 않았고 배려가 많은 친구였다. 성호는 얼굴도 아주 잘 생겨서 인기가 많았다.
세아는 공책을 여러 권 샀다. 성호도 공책과 연필을 샀다. 학교로 들어가는 내내 둘은 말이 없었다. 그냥 같이 걷기만 했다. 교실에 도착하자 아무 말 없이 자리로 갔다.
오후에 성호는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 친구들에게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서 가져왔다고 했다. 성호가 연주한 곡은 처음 듣는 곡이었다. 뭔가 마음이 슬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