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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우근 Sep 10. 2024

희끗희끗 나무들

  당신이 지나친 나무는 

  나무인 동시에 나무 아닌 것이 되어갑니다

  바람이 불면 수 만개의 잎을 가진 채로 

  나무는 연주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를 숨긴 채로

  활달한 원숭이들의 이동통로가 되어서

  나무는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부터 조금씩 물러서고 있습니다

  밤의 나무는 검은 도화지

  가지에 앉은 다양한 색의 새를 물감처럼 그려놓습니다

  커튼과 커튼이 이어지듯

  나무는 또 다른 나무와 끝없는 손을 잡고 있습니다

  아침의 커튼이 새로운 빛으로 흔들거리듯

  잎이 생겨나는 나무는 온종일 희끗희끗합니다

  스스로를 푸르게 채색한 채로

  들쑥날쑥한 크기로 이어진 나무들, 

  매번 나무를 페인트칠된 담장처럼 지나치는 사람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나무 한 그루가 자신에게 조용히 다가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새로운 잎을 펼친 채로 분명히 춤추는 나무를 보면서

  그는 들썩거리는 하나의 커튼 속으로 들어갑니다

  자신이 태어난 날짜에 심어진

  나무와 포옹하면서 

  그는 속수무책으로 나무와 함께 떨어지고 있습니다

  깊은 어둠 속으로

  나무 주위를 빙빙 돌았던 유년의 얼굴과

  지금은 사라진 점박이 개의 뜀박질과

  비바람과 함께

  그 순간의 나무가 되어서

  점점 아무도 몰라보게 될 나무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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