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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개노릇, 알고보면 하드코어

by 스티키 노트
(제목: 안아줘)--아크릴 물감. 나는 그 극심했던 공황장애의 터널을 오리를 끌어안고 버텨냈다.

나의 개 오리. 보기드문 미모견임에도 의외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스타일. 그 특유의 지랄맞음으로 내 골을 알차게 빼먹다가도, 이따금 양심이 아팠는지 가만히 날 바라보며 기색을 살피곤 한다. 나를 몹시 걱정하는 듯한 오리의 표정과 그 눈빛이 오히려 나를 근심케 한다. 자식.... 소울풀 하긴. 이 아줌마의 노동력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자신이 먹고 살고 있음을 아예 모르고 있는것 같지는 않다. 음..자세가 좋아. 명견등극 되시겠다.


나는 중증의 불안장애와 성인ADHD를 갖고 있다. 의사는 상위 1프로의 심각성을 운운한다. 가진것이 이딴것밖에 없다보니 사는게 남들 못지않게 힘에 부친다. 허덕허덕 잘 살아내는듯 하다가도, 재건 가능성이 의심될 정도로 멘탈이 엉망으로 추락해 버릴때가 종종 있다. 그럴땐 숫제 진창에 쳐박히는 기분이다.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역치를 넘어서서 한번 곪아 터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사태가 심각해진다. 마음이 단단하질 못해 회복탄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중증 뇌질환자인 것이다.


오리를 만나기 전의 나는, 마음이 바닥까지 곤두박질 칠때면 모든걸 다 내려 놓아버려야만 했다. 10년이 넘게 지속된 은둔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절망의 토네이도 한 가운데에서 내가 할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기분이 좀 그런 상태인것이 아니라, 뇌의 기능 이상으로 실제 나의 몸과 마음의 기능이 melting down되어 바닥에 와르르 엎질러져 버린다. 심각한 수준의 공황장애였다. 수습불가의 패닉상태가 계속 이어졌다. 그럴때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주저앉아 나를 증오하는 일밖에 없었다. 열패감이 대단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정신적 나약함을 탓하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뇌 시스템의 오작동은 강한 의지만 가지고는 거역하기 힘든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약물치료의 도움이 꼭 필요한 상황임에도 그때는 그걸 몰랐다.


나는 나의 박약한 의지를 탓하는 타인들의 비난 앞에서는 지극히 방어적으로 나를 보호하려 들었지만, 정작 혼자만의 시간속에서 나를 누구보다 맹공격하는건 나자신이었다. 그 공격이 위험한것은 수위의 심각성에 있다. 죽어야 끝이 나는 수준의 심각성을 갖고 있기가 십상이었다. 그럴때 내가 선택할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매일같이 목을 죄어오는 자살충동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내가 여태 살아있는것은 기적이었고 나의 힘이 아니었다. 나를 창조한 존재가 나를 살리기 위해 내게 보내준 존재들을 나는 여럿 알고있다. 그중 하나가 오리이다. 나는 그 극심했던 공황장애의 터널을 오리를 끌어안고 버텨냈다.


마음이 단단하지 못한자의 반려견 노릇이란, 알고보면 그 자체로 하드코어다. 오리는 내가 죽음을 마음먹은 순간에 흘린 눈물들을 핥아먹고 자랐다. 헌신적인 남편과 오리를 두고 그런 몹쓸 생각을 해선 절대 안되었지만, 나의 변변찮은 전두엽은 계속 나를 들쑤시고 부추겨 매번 상황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갔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나는 그 정신적 고통에 대해 온몸으로 죽을힘을 다해 맞섰으나 매번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안다. 나만 바라보고 사는 작은 개 앞에서 그렇게 철철 우는것이 개의 정서에 얼마나 큰 불안을 안기는지 잘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나의 극심한 혼란은, 오리에게 혹독한 감정노동을 안겼을 것이다. 나는 그게 하염없이 미안해서 어떻게든 울음을 참아내려 죽을 힘을 다해 끅끅대지만, 결국은 압력솥처럼 터져버리곤 했었다. 그렇게 오리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뜨겁게 울다보면, 이 고통스런 삶을 끝내리라 굳게 먹었던 마음이, 더디긴 해도 조금씩 조금씩 쓸어담기고 수습되었다. 분명 오리는 안기는걸 극혐하는 개인데, 나의 위기 앞에서는 매번 가만히 기다려 주곤했다. 내가 울음을 그칠때까지 자신의 체온을 느끼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런 오리를 보며, 나는 삶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대신, 세상에서의 내 작은 쓸모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내가 죽으면 우리오리는 누가 돌봐주지?' 세상 하나뿐인 '밥줄'의 길고 격한 울음에 오리는 또 얼마나 영문 모른채 마음이 녹아내렸을까. 미안하다. 내 강아지야. 미안하다.


나는 오리가 그런 순간에 느꼈을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의 어린시절, 우리 엄마는 밤마다 불꺼진 주방에서 문을 닫고 혼자 흐느끼며 밤을 지샜다. 그런 일은 내가 자라는 내내 거의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날이 갈수록 엄마의 목을 죄어오는 궁핍한 살림은, 내도록 돈이 없어 쩔쩔매는 형국이었고, 결혼생활 내내 이어진 아빠와의 극심한 불화가 특히 엄마를 절망케 했다. 엄마는 내 모든것이었고 나의 우주였는데, 자신의 삶이 너무 고단한 나머지, 울지 않고는 견뎌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려 하다보니, 모두가 잠든 밤이면 그저 주저앉아 우는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알았을리 없는 어린 나는 엄마의 남모르는 눈물을 목격할때마다 가슴께가 저릿저릿 욱신거렸었다. 마치 누군가 내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고, 어린 나의 세상은 밤마다 와르르 무너져 내려 너덜거렸다. 아주 어릴적부터 계속된 일이었다. 설령 막내딸이 몰래 훔쳐보는걸 알았다 해도 엄만 어쩔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의 눈물은 그 시절을 버텨낸 유일한 힘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어떻게든 살아내려 그랬던 것이다. 살다보면, 그저 주저앉아 우는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때가 많다는 사실을 난 너무 어릴적부터 알아버렸다.


'오리야 미안해.... 나도 우리 엄마처럼, 살기위해서 그랬어.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견디고 버텨내야 했기에, 여리고 소심한 네가 얼마나 불안해 할지 알면서도 네 앞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끝내 참아내지 못했었어.' 전두엽의 오작동으로 비롯된 갖은 맘고생을 오롯이 눈물 하나로 버텨내던 시기였다. 그런 이유로, 어린시절의 나처럼 오리가 아파할줄 알면서, 나로 인해 오리의 세상이 무너져 내릴 위험에 처할줄 알면서도 끝내 참아내지 못했다. 나에겐 너무 절박한 시간들이었고 죽도록 힘든 시기였다. 그런 과거의 내 행동들이 이제는 내 마음의 깊은 채무감으로 자리잡았고, 늙어가는 오리에게 더 미안하고 더 잘해주고 싶고 그런건가보다. 셀프로 벌이라도 서고싶은 심정이다. 지금은 병원과 약물의 도움으로 많이 호전되었지만, 그 시절엔 오리와 남편이 합심해서 나를 많이 웃기려고 했었다. 오리와 남편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그 시간들을 버텨내지 못했을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오리가 요즘처럼 이렇게 말안듣고 느물거려도,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아낼수밖에 없는것이다. 사자의 영혼을 가진 나의 개. 오리는 요즘 갈수록 점점 더 삐딱~한것이, 옆에서 사람이 간만에 분위기 잡고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도 허락도 없이 먼저 자리를 뜨거나 생까는 만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럴때마다 뜨악하고 이건 좀 아니다 싶고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저 밑바닥 어딘가에서부터 스물스물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을 내 모든 인내심을 다해 애써 참아 누른다. 그리고 내 남은 교양과 애정을 남김없이 모조리 끌어모아 조곤조곤 낮은 어조로 이렇게 타이르고 있는 것이다. "야! 너 양아치니? 이거 누가 일케 죽죽 물어 뜯어 놓으라고 그랬어? 나 지금 누구랑 얘기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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