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앞다리 부상으로 병원에 가 치료를 받았다. 아침부터 갑자기 절뚝이는데 아이고 가슴이야... 심장이 내려 앉는줄 알았다. 젊은 개들과는 달리 고령의 개들은 사소한 증상에도 삶이 달라질수 있기 때문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움직이는걸 죽어라 싫어하는 녀석이 대체 뭘하다 갑자기 저리 된건지...쯧쯧. 잘 회복해야 할텐데 걱정이 한아름이다. 다리에 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운동 제한이 오면, 지금과 같은 건강을 유지하는 일에 큰 차질을 빚는다. 체중도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파생적으로 혈관건강도 나빠진다. 쿵하고 내려앉았던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던 개수발을 오늘도 이어가기로 한다.
노견의 반열에 접어든 개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많은것을 감당해야하는 삶'이라 표현할수 있을것이다. 닥쳐올 일들에 대한 막연한 슬픔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삶. 고령의 개와 함께 걸어가는 길위에는, 뭣보다 생(生)에 대한 이 간당간당한 느낌을 감내해야 하는 심적 고충이 따르는 것이다. 사랑스런 나의 개와 뜨신 체온을 나누며 매일 부비적 부비적 행복을 느끼고, 무미건조한 삶에 내 개로 인해 웃을일이 많이 생겨 삶이 유쾌해지더라도 크게 달라지는건 없다. 하루하루 날짜 지나가는것이 두렵고, 나의 개가 한해 한해 나이들어감을 심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일의 묵직한 무게감이라니.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엄습해오는 슬픔에 입맛을 잃을 지경이다. 도리가 없는 일이다. 하루하루 조금씩 위태해져가고, 위기감이 점점 고조되는 일은 뭘 어찌해도 막을 도리가 없다.
쿵하고 가슴 내려앉을일이 점점 많아져도 마찬가지로 감당해야 한다. 오리가 오늘도 여전히 시력을 부여잡고 있는지, 왜 오늘따라 이리쿵 저리쿵 멀쩡히 부딛히고 다니는건지, 왜 그리 오래도록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건지 하나도 놓치지 말고 면밀히 관찰하고 내가 끌어안아야만 한다.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알수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슬픈 예감들이다. 우리들의 필연적 이별, 그리고 남겨질 나. 덩달아 와르르 무너져 내릴듯한 심경을 간신히 부여잡고 의연한척 버텨내기란 쉽지않은 일이다. 조마조마하다. 내게 있는 모든 긍정의 쪼가리들을 닥닥 긁어 모두어도, 이따금씩 무너지는 마음을 수습하기가 고단하다. 아무리 오리가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라지만, 열다섯씩이나 먹은 노견이 제아무리 건강해봐야 약관의 강아지들만 하겠는가. 내 개가 없는 암울한 미래가 슬슬 도래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평상심을 잘 유지한채 생활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오늘도 훅 들어오는 불안을 꿀꺼덕 삼킨다. 설령 아침에 예사롭지 않은 토악질을 목격했다거나 미동도 없이 너무 오래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놀라거나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 나의 개에게 간파당한다. 아니야 아무렇지 않아. 괜찮을거야 괜찮을거야. 이번에도 잘 넘어갈수 있을거야. 날 믿고 두고봐.
그러니 내게 주어진 가장 힘겨운 과제는 내 개 앞에서 의연함을 애써 유지하는 일일것이다. 언제 닥쳐올지 모를 막연한 슬픔을 시시각각 삼켜내고, 오늘도 명랑한 얼굴로 함께 산책길을 나서야 한다. 예전처럼 통통 튀는 귀여운 발걸음은 어느새 사라져버렸을지라도 나는 괘념치 않고 녀석에게 속도를 맞춰 걷는다. 전보다 어준한 걸음, 사라진 청력, 둔탁해진 후각 등이 가져다 주는 위태로운 마음과 서글픔에 굴하지 않고, 오늘도 열심히 함께 걸으며 서슬 시퍼런 운명에 맞서는 중이다. 오리와 내가 함께 말이다. 너는 나와 별개일수 없어. 네가 살아있는 동안 네 모든 아픔과 함께 할거야.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일랑 넣어둬 넣어둬~.
다만 그날이 하루라도 더디 오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언뜻언뜻 풍경오는 오리의 포근한 체취에 자다가도 안도를 느낀다. 깊이 잠든 개에게서만 맡을수 있는 냄새를 개집사라면 다 알것이다. 고소하고 포근한 내 개의 냄새에 눈을 감은채 감사기도를 올린다. "주님, 아직도 내곁에 둘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이 작고 따수운 생명체를 여태 품을수 있게 해주심에 오늘도 제가 감격합니다."
오늘도 하네스와 간단한 간식을 챙겨 오리와 함께 산책길을 나선다. 살아있는한 우리는 매일 이렇게 나서야 한다. 멀지 않은 미래의 슬픈 예감이 우릴 감쌀지라도, 걷지 못하는 날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개모차를 밀고서라도 나서야 한다
바깥공기를 콧구멍에 넣어주고 사방에서 피어나는 오늘의 새로운 냄새들을 맞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아직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일깨워주고, 설령 꺼져가는 중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흔들어 깨워볼 생각이다. 나는 아직 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낼 준비는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데 싸울각오는 되어있다. 오리곁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릴때마다 나는 악의 악을 써 쫒아보낼것이다. 멀리 멀리 후쳐 보내버릴것이다. 그렇게 바락바락 끝까지 싸우며 버티다가, 나의 개에게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면, 그때 나는 오리를 마지못해 보내줄것이다.
스트릿 출신이라는 사무친 스팩을 떨쳐내지 못하고 평생을 긴장을 부여잡고 살아온 나의 개 오리. 나는 오리의 마음을 알고 있다. 자기가 잘해야 사랑받을수 있다고, 자기가 잘해야 또다시 버림받는 일을 면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오리. 아마도 그 긴장이, 삶의 끈을 야무지게 부여잡는 힘이 되었을것이다. 어쩌면 건강의 비결이 되어주었을수도 있다. 안쓰럽지만 그랬을것이다. 내 추측이 틀릴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오리를 지켜봐온 바로는 가능한 얘기다.
오리와 나. 우리는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며 살아가고 있다. 오리는 유리멘탈로 자주 흔들리는 나에게 품을 내어주고 체온을 나눠주고 있다. 그리고 주인이 개소리할때 적당히 무시해줌으로써, 뼈아픈 '현타'를 안기는 기능까지 탑제한 요즘 보기드문 명견이다. 나는 그런 오리에게 매일 밥을 지어주고 패악부리는것을 너끈히 받아준다. 내가 아니면 저 (개)지랄병을 누가 받아주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감당하며 함께 급류를 헤치고 나아가는 중이다. 오리나 나나 피차 관절 마디마다 삐그덕 소리가 작렬하는 시기를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둘다 아직 살아있다. 그게 중요하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서로 체온의 따스한것과 달콤한 체취를 느끼며 살고있는 것이다. 오리는 완고하고 고집스럽지만 내 눈물 앞에서만큼은 관대하고 유연하다. 나는 그런 오리가 내 눈물받이로 전락하지 않도록 꽉 신경을 쓰고 있다. 정신과 병원에서 받은 비상약을 한움큼 집어 먹을지언정, 이제는 오리 앞에서 울지 않는다. 개는 인간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도 친구의 눈물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존재이다.
노견과 함께 사는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연습한다. 언젠가 오리가 내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미소를 꺼낼 것이다. 솔직히, 연습한 만큼 잘 될른지 장담은 못하겠다. 너로 인해 행복했었다고, 그리고 미안했다고 울지않고 또박또박 말해줄 참이다. 젠장... 글렀다. 상상만 해도 눈물이 철철 난다. 더럽게 슬프다.
그렇지만 걱정할건 없다. 나는 반드시 오리가 스무살이 넘도록 건강하게 관리할 생각이고, 스무살이 되는 해엔 어떻게든 대학도 보낼 예정이다. 한번뿐인 소중한 견생, 적성은 찾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고달픈 라이딩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쯧.
화이팅이다. 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