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상 지금은 초봄이어야 한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인해 늦봄, 초 여름의 날씨로 어제는 무척 덥기까지 했다.
어제는 아내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동네 뒷산을 산책했다. 벌써 봄이 한창이고, 오월에나 볼 수 있었던 신록들이 온 산을 푸르게 물들이고 있었다. 한동안 우리 아들의 군입대로 인해 침울하고 근심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아들과의 통화로 인해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아들은 잘 먹고, 잘 자고, 크게 다친데 없이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벌써 2주가 훌쩍 지나갔다고, 남은 훈련도 잘 마치고 퇴소식 때 부모님 뵙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동기들이 너무 잘해주고, 더구나 몇몇 동기생은 분위기를 띄워주는 역할을 하는지 무척 재미나고 웃기다는 아들의 생생한 전화통화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우리 부부도 아들의 군입대로 인해 계속해서 침울해하기만 할 수 없기에, 어제 동네 뒷산을 산책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불문율처럼 통하는 말이 있다. "엄마, 아빠는 산에만 가면 거짓말쟁이가 돼. 조심해야 해."
그렇다 나는 간단하게 산책을 하자고 해놓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코스를 늘려서 산행을 하곤 했다.
내가 하는 흔한 거짓말로는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저기 고개만 넘어가면 끝이야" "이제 정말 다 왔어"
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눈보라 치는 소백산을 일박이일로 종주하였고, 울릉도를 백패킹으로 2박 3일을 걸어서 일주하였다. 지금도 가끔씩 눈이 많이 내리는 풍경을 보면 아내와 아들을 "으으으 소백산 또 생각했어 으으으" 하고 했고, 마른오징어를 보곤 "으으으 울릉도" 하곤 한다.
어제의 산책을 하는 도중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10여 년간 잘 신고 사용했던 등산화를 다른 등산화를 신고 다니느라 이년 정도 신지 않고 신발장에 보관했는데 그만 산책도중 밑창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하하하 그 밑창 정말 고맙네. 서방 따라 산책에 나선 것을 후회하려던 참인데. 때마침 떨어져 나가서 무척 고맙네. 하하하." 마누라는 밑창을 주워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웃으며 떨어져 나간 밑창과 나를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놀려대었다. "참내 서방은 신발 밑창이 떨어져 나가 고통받고 있는데. 참나원." 어느덧 집에 도착하여 다른 등산화로 갈아 신고는 "마누라 예전 살던 곳까지 산책 간다고 했으니 마저 가자고." "끄으응 그래요." 마누라가 마지못해 승낙하곤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산책을 시작하곤 아내는 점차 말수가 적어지고 거친 호흡 소리만 들렸다. "역시 경치는 멀리서 보는 게 최고야. 자연 속으로 들어와서 보는 건 무리야 역시 무리야." 아내가 너스레를 떨며 다신 나선 산책을 후회할 때 즈음 둘레길을 끝에 도달하고 예전 살던 곳 앞 공원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취하게 되었다. 온 공원 가득히 벚꽃이 만개하였고, 사람들이 군데군데 돗자리를 펴고 맛난 음식들을 먹으며 벚꽃에 취해 있었다. 온 공원 가득 봄이 만개하였던 것이다. 아내와 난 잠시 꽃구경을 하고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였다. "마누라 이렇게 갈증 날 때 시원한 맥주 한잔 어때?" "마저 맥주가 있었지! 얼른 가요." "뭐 먹을까?" "뭐든 좋은데 반드시 시원한 맥주는 있어야 해요." 이윽고 식당에 도착하여 식사를 주문하고 연이어 "시원한 맥주도 한 병 주세요."
식당에는 주말을 맞아 산행객들과 벚꽃 산책을 한 가족들로 만원이었고, 밀린 주문 준비에 여념 없는 사장님은 우리 부부의 속내도 모른 체 반찬만 내오셨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 일어나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맥주 한 병과 맥주잔을 꺼내어 들었다. "맥주가 많이 고팠나 보네요." "네, 시원한 맥주가 급해서..." 맥주를 들고 자리에 돌아와 아내에게 가득 따라준 뒤 "건배!" 소리와 함께 맥주를 들이켰다. 풍성한 거품과 시원한 맥주가 내 목젖을 자극하며 뱃속으로 들어와 시원함을 온몸으로 전파시켰다. "캬! 이 맛에 산에 가는 거야." "캬! 이건 좋네요. 호호호"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누라 기왕 옷도 버린 김에 뒤뜰 텃밭에 퇴비 뿌려놓자." "안 힘들겠어요? 그래요 서방만 괜찮다면." 집으로 돌아와 등산화를 작업용 장화로 갈아 신었다.
작년에 사놓은 퇴비를 어깨에 둘러메고 뒷마당 텃밭으로 이동하였다. 원래 뒷마당 텃밭은 화단의 용도였으나, 작년부터 텃밭으로 바꾸어 야채를 심어 부식으로 경작해서 먹었다. 올해는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잘 먹었던 야채를 위주로 재배할 예정이었다.
1년 동안 잘 발효된 퇴비는 의외로 냄새도 심하지 않았고 텃밭의 흙과 잘 동화되었다. 물론 퇴비를 뿌린 후 텃밭을 갈아엎고 쟁기로 잘 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뒷마당 텃밭을 마무리하고 집 앞 화단을 손질하였다. 겨우내 앙상하게 남아있던 로즈메리를 캐내고 화단의 흙을 갈아엎고 정돈하였다. 이윽고 "마누라 여기에 이쁜 꽃들 심어줄까?" "네 좋죠." "그럼 기왕 시작한 거 모종가게 가서 모종 사 오자. 야채도 나온 거 있으면 상태 봐서 사 와서 심고."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니에요?" "응 괜찮아. 하는 김에 하자고"
아내와 난 모종가게로 이동하였다. "사장님, 오랜만이네요." "아이고 어서 오세요. 오늘은 뭘 드릴까?" "아내가 꽃을 심자고 하네요." "어떤 꽃?" "사장님이 추천해 주세요. 마누라 사장님이 골라주시는 것 색깔 맞춰서 사봐"라고 하곤 나는 야채 모종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벌써 엽채류 모종은 가득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엽채류 모종들을 이것저것 골라 담았다. 아내도 어느덧 꽃모종을 골랐다. "엽채류 모종은 1만 원, 꽃모종은 4만 몇 천 원." "사장님 우수리 빼고 5만 원" "그래요." "사장님, 서비스로 몇 개 더 주세요." "으이그 이런 건 계산 전에 해야 하는 건데..." 하시면서 하얀 꽃이 만개한 탐스러운 히아신스 두 그루를 주셨다."사장님 이건 너무 과분한데?" "그럼 돈 줄 거야?" "아니 과분하지만 잘 심고 사장님 생각하면서 잘 돌볼게요. 하하하" "으이그" "사장님 다음에 또 올게요! 고추는 언제?" "응 20일 지나서 와" "네" 이렇게 한가득 모종을 사고 싣고 돌아오는 길은 각종 꽃들의 향기로 차 안 가득히 봄의 향내가 풍겼다.
이윽고 집에 도착하여 맨 처음 아내의 화단에 꽃모종들을 옮겨 심었다. 히아신스, 히비스커스, 채리 세이지, 사계절국화 등등 여러 꽃들을 정성껏 화단에 옮겨 심었다. 그러고선 텃밭으로 모종을 들고 이동하였다. 정성껏 고랑을 만들고 모종을 하나씩 옮겨 심었다. 심으면서 '잘 자라거라. 쑥쑥 자라거라. 너의 잎들을 맛있게 먹게 해줘.'라는 심정으로 정성껏 모종을 심었다. 그리곤 겨우내 사용하지 않았던 자동물호스를 이용해 텃밭 모종에 물을 흠뻑 주었다. 그리곤 물호스를 집 앞 화단으로 끌고 와 꽃들에게도 흠뻑 물을 주었다. '꽃들아 활짝 피어나서 요즘 침울해 있는 울 마눌탱이 기분을 위로해 줘'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물을 흠뻑 주었다.
머지않아 군대 간 아들이 100일 휴가를 나올 때는 이 꽃들이 우리 아들을 제일 먼저 반기겠지, 텃밭의 야채들은 아들의 풍성한 쌈 거리 채소가 되겠지, 그런 소소한 기운들이 우리 아들의 군대생활의 밑거름이 되겠지.
봄은 시작이다. 처음이다. 그 시작 속에, 그 처음 속에는 많은 기대를 담고 있다. 난 어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을 8킬로 넘게 하고, 자연을 즐기고, 벚꽃 구경도 하고, 좋아하는 텃밭을 가꾸고, 밝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모든 것에 마누라가 함께 있어서 좋았다. 나에게는 이게 행복이고 이런 행복이 건강하게 지속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