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한가운데에서

뒷산에 단풍이 이쁘게 물들었네요.

by 칠봉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건강상의 이유로 뒷산에 오르는 것은 큰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했었습니다. 뒷산을 오르는 내내 숨이 벅찼고,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몇 걸음 걷고 쉬 고를 반복해야 겨우 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 밑에 사는 특혜를 별로 누리지 못했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아팠던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저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즐기던 산행, 캠핑, 플라이낚시, MTB, 로드 자전거 등등의 것들을 별로 즐겼던 기억이 없습니다. 한몇 년 동안 그랬었던 것 같습니다.


올봄에 근본적인 문제를 찾았고, 수술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회복 운동삼아 뒷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일주일에 두 번, 일주일에 네 번 다섯 번 이렇게 횟수를 늘리다 보니, 어느덧 다리에 근육이 다시 붙고, 없어졌던 엉덩이도 다시 생겨 허리에 붙어 있었습니다.


산행을 하는 시간 동안은 일부러 머릿속을 비우려고 했었고, 또는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생각의 가지를 뻗어가는 그러한 사색의 산책도 병행했더랬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 건강은 예전만은 못하지만 제법 어느 정도 정상범위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 그 무덥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가을로 접어들었음을 떨어지는 밤송이와 도토리에서부터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껏 부산해진 청설모와 다람쥐들을 보며 가을이 깊어짐을 느꼈습니다.

지난주부터는 온 산이 이쁘게 물들고 있습니다. 온 산이 이쁜 파스텔 톤의 색채로 물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산 바로 밑에 살다 보니 식탁에서도 뒷 산을 바라볼 수 있는데 매일매일 점점 더 단풍이 물들어가면서 이뻐지고 있습니다.

그런 단풍을 산 위에서 보자는 저와 단풍은 멀리서 산을 보면서 즐기는 거지 산 위에 올라가는 건 아니라는 아내와 요즘 티격태격하고 있습니다. "마누라 이번주말에 단풍놀이 가는 거 알지?" "싫어 안가! 안가! 또 힘들게 할 거지! 안가 절대 안 가!"

그렇게 말하지만 막상 주말이 되면 조용히 저를 따라나섭니다. 그리곤 "오늘 코스 힘들게 잡지 마!"라곤 합니다. 그래서 아내와 산행을 할 때는 주로 둘레길 위주로 다닙니다. 대신 거리를 좀 길게 잡아서 가곤 하죠.


그런데, 이번 주에는 정상으로 올라가려 합니다. 온산을 이쁘게 물들인 단풍이 이번주말이 절정이 될 테니깐요. 물론 산 위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있을 수 있지만, 저희 집 쪽에서 올라가는 등산로는 일반 초심자가 오르기에는 좀 어려운 코스들이라서 정상까지는 등산객이 별로 없습니다. 한가롭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대신 아내는 좀 숨차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일 년 전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일 년 전에는 나도 그랬어. 그렇지만 자주 다니다 보니, 체력이 다시 올라왔어. 마누라도 꾸준히 운동해 봐."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고, 뒷 산의 단풍은 더욱더 진하게 물들어 갑니다. 이 단풍이 떨어지고 차가운 겨울이 시작되겠지요.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이 오고, 다시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될 때쯤 가장 반가운 손님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겠지요.

요즘은 계절이 바뀌는 것이 아쉽지 않습니다. 마치 어서 빨리 이 계절을 견디고 치러내자라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내년 9월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반가운 그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우리 부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가을은 참 이쁘게 이쁘게 깊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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