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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13. 2024

사이비

연암 박지원의 처남인 이재성(李在誠)은 연암을 영결하면서 이렇게 읊었다.


가장 참지 못한 것은 / 最所不能

두루뭉술 인물을 상대하는 일 / 酬接鄕愿

굽은 바늘 썩은 겨자씨 무리들 / 曲鍼腐芥

모두들 너무나 미워하였네 / 胥致尤怨


‘굽은 바늘과 썩은 겨자씨’는 사이비를 말한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사술(邪術)로 행세하던 사이비 승려를 꾸짖으면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분홍과 자주색이 어지러이 빨간색에 섞이니 / 紅紫紛紛幾亂朱

아, 어목(魚目)이 우부(愚夫)를 속였구나 / 堪嗟魚目誑愚夫

거사가 손가락을 가벼이 퉁기지 않았더라면 / 不因居士輕彈指

얼마나 상자 속에 무부(碔砆)를 담았으리 / 多小巾箱襲碔砆


공자는 분홍과 자주색으로 평상복을 해 입지 않았다(紅紫不以爲褻服)고 했다. 분홍과 자주는 주색(朱色)과 적색(赤色)의 간색, 말하자면 두 가지 이상을 섞어 만든 ‘모호한’ 색이기 때문이다.


일연이 분홍과 자주가 빨간색에 어지러이 섞였다고 한 것은 사이비 중의 정체성을 빗대어 비난한 것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보이는 ‘어목’은 물고기의 눈을 말하는데, 그것이 우부를 속인 것은 그 모양이 구슬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무부’는 붉은 바탕에 흰 무늬가 있는, 옥과 비슷하면서도 옥이 아닌 돌, 역시 사이비를 말한다. 비슷하다는 것은 이미 둘은 같은 것이 될 수 없음을 전제하고 있다. 둘 중 하나는 사이비, 곧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가짜라는 것이다.


‘거사’는 사이비 중을 날려 보낸 밀본(密本) 스님을 말한다. 사이비 중은 세상에 밀본 같은 상수(上手)가 도처에 널려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함부로 날뛰는 것이다. 밀본이 보기에 사이비 중은 손가락으로 튕길 정도로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옥이 아닌 무부가 옥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일시적인 거품에 지나니 않는다.


공자가 사이비를 증오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고 한 술회를 이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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