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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Dec 07. 2022

저들은 늘 우리를 속여 왔다.

'이번만, 이번만'이란 그들의 기만

"이번 유행이 고비입니다."

"이번 계절이 고비입니다."

"올해가 고비입니다."


이 말했고, 청장이 말했으며, 총리와 대통령이 말했다.

발화 주체는 달랐으나, 결론은 죄다 "그러니 방역에 협조해 주십시오."였다.


결과적으로 정부와 전문가들은 오판했고, 언론은 위기를 조장했으며, 국민은 이에 제대로 속아넘어갔다

바이러스는 도무지 인간의 힘으로 거나 정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역의 망을 조일수록 감염자가 안 나왔지만, 이는 그런 것처럼 보였을 뿐, 결코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며 근본적으로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이 짓이 계속되는 동안, 그 폐해와 해악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떠안아야 했다.


한국이 그토록 자랑했던 K방역은 사실상 옆 나라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같았다. 아니, '사실상'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동일했다. 그러나 전임 정부와 현 정부는 그 이념적 지향을 가리지 않고 국민에게 희망 고문을 가하며 거짓된 선동을 일삼았다. '이번이 고비'라고, '이번만 잘 넘기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그러니 부디 협조해 달라'고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의무의 영역에 협조불필요했다.

강제적 조치가 시행되는 한, 따르지 않으면 제재가 수반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모든 게 다 당신(들) 탓'이라는 국가 차원의 협박이었다.


참아 달라, 기다려 달라, 견뎌 달라고 말해 온 이들은 관료적 독선과 학자적 아집으로 철저히 무장한 상태였고, 배려와 미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방역 과정에서 자행된 마녀사냥과 차별을 묵인했다.

'비상시국'이란 이유로 일상의 영역에서 횡행한 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력, 그리고 개인 대 개인으로 전개된 공격은 사람들 사이의 불신과, 일상 영역에서의 과도한 두려움이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방역 3년차인 2022년 현재,

저들은 또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이 고비라고,

이번 겨울이 고비라고,

그러니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한 번 속는 건 쉽다.

두 번까지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세 번까지 속는다면, 이는 스스로 어리석은 존재임을 드러는 꼴밖에는 안 된다.


뒤늦게 눈치를 보며 움직인 방역 당국이고, 그간의 행태를 볼 때 대중교통에서의 마스크 착용 강제만큼은 무기한으로 유지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강제 해제야말로 마스크로 빼앗긴 자유를 되찾는 데에 핵심적인 요소다.

갖은 핑계를 대며 누군가가 마스크로 완장질을 하게 둔다면,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 중지란 반쪽짜리에 불과해지며, 한국인은 전과 마찬가지로 제한된 자유가 전적인 자유인 것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명심하도록 하자.

자유는 한번 훼손되면 절대 원상복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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