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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an 10. 2023

자존감과 자존심

두 말을 구분하는 것에 대하여.

유명 작사가인 김이나 씨의 책(나를 숨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을 보다가,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언급하는 구절에 이르렀다.


저자는 두 단어를 두고 이리 서술했다.


자존심이 꺾이지 않으려 버티는 막대기 같다면 자존감은 꺾이고 말고(로)부터 자유로운 유연한 무엇이다. 자존심은 지켜지고 말고의 주체가 외부에 있지만 자존감은 철저히 내부에 존재한다.

(김이나, [나를 숨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위즈덤하우스, 2020, p.200)


그리고 나의 생각의 나래는 이로부터 펼쳐졌다.


한국인이라면, 또는 한국어를 자유롭게/일정 수준 이상으로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자존감과 자존심이 어떤 점에서 다른지 알 것이라 본다. 나도 두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한국어 화자는 자존심과 자존감을 구분하고, 각자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 걸까?'


심心은 마음이요, 감感은 느낌이다. 보편 인식상 감은 1차적이고, 심은 감을 넘어서니 2차적이다(물론 이러한 인식엔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감은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반면 심은 중간에 뭔가를 거친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심과 감은 정신분석학적 내지 철학적으로는 명확히 구분될지언정, 일반/일상적으로는 그렇게 확실히 나뉘지 않는다. 물론 단어 자체가 묘사하는 바는 각기 다르지만, 둘은 그렇게 독립적이면서도

분명 연결되어 있다. 이는 인간이 육체적이면서도 정신적인 존재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감 없는 심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결국 마음과 느낌은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거나 같이 가게 돼 있다.


이로 보건대, '자존'이란, 곧 스스로 높인다는 이 말과 붙은 자존감과 자존심은 지금 사람들이 쓰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렇게 양단兩斷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 높이는 감정과 스스로 높이는 마음이 어찌 칼로 무 베듯 나뉠 수 있으며, 무엇은 긍정적이고 또 무엇은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뒤에 어떤 말이 붙느냐의 차이로 두 단어 사이엔 우열관계가 성립다. 이를 두고 생각해 보, 이는 언젠가 마음心과 느낌感의 차이를 깊게 고려하지 않은 채 누군가가 두 말에 부여한 의미가 굳어지고 습관화되면서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더라. 어쩌면 동의어(유의어)였을지 모를 두 단어는, 정작 이를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갈라지고 말았단 추측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대상엔 고유의 의미가 있다. 그러니 '처음 쓰였을 당시'의 자존감과 자존심에도 분명 어느 정도의 거리는 있었을 터. 그러나 그 거리를 이리도 크게 벌린 건, 이를 사용해 온 사람들이 아니었을지? 그렇다면, 우리는 괜히 어떤 단어는 좋은 쪽으로, 반면 다른 단어는 나쁜 쪽으로 별 근거도 없이 몰아온 건 아닐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한편,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안 좋은 의미로, 내려놓아야 하는 마음으로 여겨져 온 '그 단어'에게 미안한 감정(마음)을 품게 된다.


말에죄가 없다. 다만 그 말을 지금의 의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이들에게 책임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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