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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by 햇빛 윤

문제투성이 동생이 다른 지역으로 취직을 했다.

면접 날, 긴장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동생을

샌님과 내가 함께 데려다주었다.


영재 출신이었던 동생을

여전히 아깝게 여겼던 대학교 교수님이

면접 기회를 주며 힘을 실어주었고, 동생은 합격했다.

드디어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새 정장을 맞추러 갈 때도 내가 옆에서 골라주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동생의 모습은, 하려고만 마음먹는다면

세상은 늘 그에게 열려 있는 듯했다.


나는 정장 한 벌 사기조차 서러웠던

내 지난날이 떠올라 마음이 욱신거렸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발 정신을 차리길 바라는 안도감이 더 컸다.


샌님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문득,

TV 속에서 부모와 연을 끊는 연예인들의 이야기들이 겹쳐졌다.

‘혹시 동생이 또 일을 저지른다면 나도 연을 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시간이 흘러 동생이 회사에 적응했다고 생각할 무렵,

샌님과 나는 그의 자취방을 찾아갔다.


함께 고기를 구워 먹고,

샌님과 술잔을 주고받는 동생의 모습은 평온했다.

내 앞에 놓인 현실이 잠시나마 평범해 보였다.


지금 동생의 집,

예전에 동생과 함께 살던 집,

바퀴벌레가 나오던 내 하숙집이 차례대로 스쳐갔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평범한 누나가 된 것 같았다.


이때 나는 32살, 동생은 27살이었다.

오고 가는 술잔 속에서 10년 전

우리 남매의 동거 시절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다시는 그런 날들이 오지 않을 것처럼, 웃으며 과거를 털어냈다.


그날 나는 동생을 믿었다.

그리고 다시 엄마 아빠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이 직장인이 되자 집안도 잠시나마 평온해졌다.

결혼 준비에 정신이 팔려서일까, 엄마와도 큰 부딪힘이 없었다.


그 평온함이 꼭 사랑받는 것 같았다.

아무 일 없고 조용한 것, 그게 곧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온은 늘 오래가지 않았다.


종종 동생에게 몇만 원씩 빌려주며

“꼭 갚아라”라고 타이르던 나는

이번에도 뻔뻔한 그의 태도에 화를 냈다.


용돈을 줄 수 있는 터울이었지만

나라도 돈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었다.


“돈도 버는 놈이, 돈도 못 갚냐.”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한 달째 답장이 없었다.

익숙한 불안이 가슴 깊숙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엄마에게 동생이 이상하다고 전하자,

엄마도 돈을 빌려줬다고 했다. 금액은 백 단위였다.


“돈도 버는 놈이 독립도 했는데 지 알아서 하겠지.”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이상하게 웬일로 엄마가 올바른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애써 신경을 끊고 살았다.


하지만 동생의 생일날, 이상하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의 이런 예리한 직감 때문에, 동생은 지금도 가끔 말한다.


“누나가 두 번 살렸잖아. 얘 아니었으면 그때 진짜 죽었어.”

동생은 도움이 필요할 때만 누나라고 불렀다.


그날 나는 오만 원을 입금하며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야,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진 모르겠지만

오늘 생일인데 궁상떨지 말고 뭐라도 먹어.”


전화가 곧바로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동생이 오열했다.


스물일곱 살 성인이 목 놓아 우는소리에 내 심장까지 무너졌다.

수많은 사고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놈이, 이렇게 울다니.

정말 울고 싶은 건 늘 나였지만 되레 침착해졌다.


그 울음 속에는 두려움, 그리움, 안도감,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야, 그만 울고 무슨 일인지 말해.”


동생은 겨우 끊어내듯 대답했다.


“사... 채...”


사채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심장이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아빠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경고가 예언처럼 떠올랐다.


“불법 사채만은 건들지 말아야 될 텐데.”


드라마와 영화 속 장면들이 머리를 스쳤다.

동생이 협박당하거나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야 그만 울고 정신 차려. 당장 갚아야 할 돈 계좌 찍어.”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돈을 보냈다.


그리고 식탁 앞에 앉아 엄마, 아빠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동생 전화 왔는데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야. 도움이 필요해.”


아빠는 씁쓸하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사채 썼네.”

그 한마디에 공기가 무너졌다.


“사채는 절대 쓰면 안 되는데...”

아빠의 목소리가 허공에 가라앉았다.

엄마도, 나도 말문이 막혔다.


가늠할 수 없었다.

금액이 얼마일지도

앞으로 우리 가족들에게 벌어질 일도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해결을 해야 했다.

방임하고 회피하는 엄마, 아빠가 그리고 동생이

우리 집을 산산조각 낼 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길바닥에 내쳐질 것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TV 속 연예인들처럼 가족들과 연을 끊지 못할 것이라는 걸


나는 또다시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끝을 알 수가 없었다.

모두를 삼켜버릴 듯한 어둠이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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