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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병기라 불린 딸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by 햇빛 윤


아빠 차가 동생을 잡으러 간 지 10분도 되지 않아

그들은 다시 나를 태우러 왔다.


내 표정이 묻고 있었다.

‘뭐야, 동생은?’


엄마가 대신 대답했다.

“엄마가 설득했어. 집에서 기다리겠대.”

“근데 너는 무섭다고, 엄마랑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대.”


그 말을 듣는 순간, 허탈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엄마와 아빠를 설득해 이곳까지 끌고 온 사람은 나였다.

그런데 정작 나는 동생이 있는 자취방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아빠와 차 안에 남겨졌다.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아빠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둘이 대화한다고 해결이 될까...”


나는 아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카롭게 대답했다.

“아빠도 엄마랑 똑같아.”


아빠는 면목이 없다는 듯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올라오라는 신호였다.

내가 무섭다던 동생은 의외로 태연했다.


입가에 얕은 미소는, 엄마를 이미 설득했다는 자신감의 표정 같았다.

엄마는 무언가를 대단하게 알아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직 갚을 돈이 있대. 차도 다시 돈 주면 돌려받을 수 있대.”


나는 더 이상 놀라지도 않았다.

숨이 막히는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핸드폰 내놔.”


동생은 더 이상 숨길 게 없다며,

솔직하게 얘기하겠다고 했다.

그제야 드러난 진실은 이랬다.


부업으로 텀블러 사업을 하려다, 소액의 사채를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법 사채 시스템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처음 빌린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동생은 여러 사람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갇혔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동생은 자신의 주민등록증, 가족관계증명서,

가족과 지인들의 번호까지 담보로 넘겼다.


만약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불법 추심팀이 가족과 지인들에게 동생의 사진을 뿌리며

“이 사람이 불법 사채를 썼다"라는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동생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게 알려지면, 나는 진짜 죽고 싶을 것 같았어.”


그리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나 그때, 너한테 전화 걸고 울 때.. 옥상 난간에 있었어.

네가 해결 안 해줬으면, 진짜 뛰어내렸을 거야.”


엄마, 아빠, 그리고 나.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말이 진실일까? 돈을 안 갚아주면 죽겠다고 협박하는 건가?’


나는 늘 동생을 '미친놈'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정말 미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 혹시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일까.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들이 숨어있다는데,

내 동생이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의 가족은 각자 다른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나르시시스트 같은 엄마.

현실을 회피하는 아빠.

사이코패스 같아 보이는 동생.

그렇다면 나는 정상일까.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은 고민할 겨를조차 없었다.

결국 동생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 휴게소에 들러 밥을 먹는데

아빠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 집 비밀 병기, 많이 먹어둬라.”


그 말에 숟가락이 손에서 떨어졌다.

아직도 주사 부작용으로 몸은 회복되지 않았는데,

그런 나를 향해 ‘비밀 병기’라니.

결국 집에 돌아가서 사채업자들과 싸우라는 말 아닌가.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이 자리에 나선 이상,

결국 모든 상황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늘 그랬듯, 나는 또다시 ‘비밀 병기’가 되었다.


동생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사채 내역 속에 파묻혀 앉아,

전화기를 붙잡고 하루를 시작했다.


사채업자들과 통화하는 동안, 동생은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

나는 언성을 높이며 협박과 맞섰지만, 속은 부서지고 있었다.

불안과 공황이 언제 다시 몰려올지 몰랐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사채업자들과의 대화는 늘 비슷했다.

"동생 누나인데요. 동생이 전화를 못 받습니다. 그래서 얼마인데요?"


그리고 지금도 기억나는 사채업자가 있다.

이름도 정확히 기억난다.

'금대리'


“너 ○○○이구나. 동생이 빌린 돈 내놔 이년아.”


내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손이 떨리고 너무 소름이 끼쳤지만

소파 위에서 덜덜 떨고 있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나는 더 강해져야먄 했다.


“야 개새끼야. 그래 내 이름 ○○○이다. 근데 뭐 어쩌라고.”

"네가 내 이름 말하면 내가 뭐 벌벌 떨까 봐?”

“돈 받고 싶으면 정중하게 얘기해. 이 시발놈아.”


사채업자에게 되레 욕을 퍼붓는 나의 모습이

더 사채업자 같았다.

너무 싫었다.


도대체 며칠 동안

셀 수 없는 사채업자들과 통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예비 신랑인 샌님을 만날 수도 없었다.

사채 내역들 틈을 방석 마냥 깔고 앉아 있는

나와 동생을 가끔 샌님이 보러 올 때만 볼 수 있었다.


샌님은 아무 말 없이 우리의 식사를 챙겨주고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출근을 했다.


하루는 엄마와 아빠도 함께 있었다.

울리는 전화기를 받아달라고 전화기를 내밀었는데

엄마와 아빠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는 마지막까지 방패가 되어야 했다.


결국 나는 사채업자들을 굴복시켰다.

“너희 불법 이자잖아. 금감원에 신고하면 원금도 못 받아.

원금이라도 받고 떨어질래? 아니면 끝까지 가볼래?”


처음엔 욕설로 맞서던 그들도

결국 나에게 항복하듯 말했다.


“그래, 이 똑똑한 년아. 합법적인 이자로 계산해 보내라.”

“원금만이라도 보내주세요.”


순간, 모든 게 끝나가는 듯한 착각이 스쳤다.

하지만 곧 알았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나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사람처럼,

끝없는 고통 속에 서 있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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