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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라는 이름의 미로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by 햇빛 윤

이 모든 일을 털어놓았던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 아직도 가족을 사랑하니?”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은 내 마음을 시큰거리게 했다.

그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속으로 나에게 또 되묻고 되물었었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사랑하는 거 아니야?’

‘사랑하니까 모든 걸 감당하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다시 되물었다.


‘가족들은 과연 나를 사랑하는 걸까?’


나는 나 자신에게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나는 동생이 불법 도박에 빠져

이 사태가 벌어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생이 이렇게까지 변질된 것은

부모의 잘못이라고 늘 확신했다.


나는 동생을 도박중독센터에 보내야 한다고,

엄마와 아빠를 울며불며 설득했다.


늘 상담을 부정하던 엄마도

이제 더 이상 버틸 방법이 없다고 느꼈는지

마지못해 알겠다고 했다.

동생도 의외로 선뜻 "가보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곧장 도박중독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동생 누나인데요.

동생이 불법 도박에 중독돼서요..”


나는 반복 재생되는 테이프처럼

또 동생의 변론인이 되어 말했다.


그런데 상담사의 첫마디가

심장을 정확하게 찔렀다.


“혹시.. 부모님은 안 계시나요?"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아뇨, 계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군요. 보통 누나가 이렇게 전화를 하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 말은 내 현실을 너무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상담 당일,

나는 동생과 함께 상담 센터를 방문했다.


동생을 상담 센터에 데리고 간 것이

내가 여태 버텨온 모든 고난의 퀘스트를 깨고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이제 진짜 끝이다. 이제 정말 해결될 거야.’

기대와 안도, 묘한 해방감이 섞여 있었다.


상담실 문이 닫히고,

긴장한 동생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대기실에서 불법 도박에 대한 책자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차례가 되어 내 상담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이었다.

내담자의 눈물을 위해 항상 놓여 있던 각티슈

눈에 바로 들어왔다.


‘이젠 나한테 필요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는데, 상담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결국 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상담가가 매 상담 때마다

건네던 체크리스트가 있었다.


요즘도 가끔 그 체크리스트에 있는 문항 중에

나 자신과 내 남편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요즘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를 1부터 10까지로 표현하면 몇일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 “4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늘 5를 넘지 못했다.


상담가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수치가 잘 오르지 않네요.”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

“5 이상 올라가는 사람이 있긴 해요?”


상담가는 아무 말 없이

내게 동생의 결과지를 보여주었다.


‘7.’


믿을 수 없었다.

'7이라니. 내 동생이?'


내 뒤통수를 누군가 세게 내리친 것 같았다.

아니, 세상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죄를 지은 사람은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 나는 불행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런데 상담가는 덧붙였다.


“동생분은 우울증 증세가 보여요.

투약이 필요할 것 같네요.”

“누나가 함께 정신과에 데려가 주세요.”

"동생이 누나를 '엄마'처럼 생각하네요."


나는 어이없이 웃었다.

행복지수 7 짜리가 우울증이라니.


내 속에서 ‘모순’이라는 단어가

불덩이처럼 울렸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동생의 '엄마'라는 말도

동생을 정신과에 데려가야 되는 역할을

내가 해야 되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상담가가 마침내 내 마음을 꿰뚫는 말을 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겠어요.”


그 한마디에 나는

마치 어둠 속에서 불빛을 본 사람처럼

심장이 뛰었다.


드디어, 드디어

내가 그토록 원했던 ‘심판의 날’이 오는구나.

나는 늘 이 모든 일이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회피하고 부정하고 방관했던 엄마.

강박처럼 박혀있었다.


집에 돌아와 들뜨지 않은 척

차분히 말했다.


“선생님이 동생 도박 중독 관련해서

가족도 함께 상담받아야 한다고 하셔.

다음엔 부모님도 같이 가야 한대.”


"동생은 우울증 약을 복용해야 할 것 같대.

내가 데리고 갈게."


나는 일부러 감정 없이 말했다.

흥분하면 엄마가 반발할까 봐.

엄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래, 뭐..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마침내 네 가족이 모두

상담 센터에 방문하기로 약속을 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예비 신랑에게 이 사실을 말했지만,

예비 신랑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행복지수가 왜 5야?”


나는 대답했다.

“이제 곧 오를 거야.

가족 상담만 하면 다 끝날 거야.”

그때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상담가가 내 변호인이 되어

이 모든 미친 상황의 원인을

엄마와 아빠의 탓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해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허황된 꿈을 꾸며 상담실 문을 열었다.


그 문을 넘으면

끝나지 않는 미로에서 헤매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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