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시작하기 전에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지금까지 써 내려온 나의 이야기들.
어쩌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정말 이런 일을 겪었다고?”
그럴 때면 나조차 잠시 멈칫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이 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이,
가끔은 믿기지 않기도 하니까.
글을 쓰는 동안
코끝이 시큰해지고
마음이 서늘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잊었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통해 다시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
내 과거를 다시 재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 내려놨다’고 생각했지만
글로 옮기는 순간마다 마음은 다시 요동쳤다.
그때마다 놀랐고,
그 놀람 속에서 조금씩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가족들을 미워하는 것 같다가도
때론 ‘증오’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여전히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내가 아팠던 만큼,
그들도 아팠으리라는 생각.
돌이켜보면,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
“그건 영화 같은 일 아니야?”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이 모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사랑받고 싶은 내 마음이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끝내 믿어준 ‘나 자신’ 덕분이었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스스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이야기를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건넨다.
사랑받고 싶은 당신의 마음이 옳다고,
그 마음을 미워하지 말자고.
상담가에게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동생이 반사회적 인격장애일 수도 있대요.
그게...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거죠?”
상담가는 언제나처럼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너무 불안하다면,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관찰해보세요.”
‘동물’이라는 단어가 마음 한쪽을 건드렸다.
성인이 된 지금,
어릴 적 기억 속에서
따뜻했던 몇 안 되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 가족은 강아지를 키웠다.
엄마는 강아지를 무척 예뻐했고,
아빠는 강아지에게 질투하듯 툴툴 거렸지만,
우리 가족 모두 강아지를
각자의 방식을 예뻐했다.
동생은 그 시절 유치원생이었는데,
강아지가 동생 머리 위에 오줌을 싸서
온 가족이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강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는 교회 앞에 조그만 구덩이를 파서 묻어주었다.
흙을 덮으며 함께 울었던 그 순간은,
가족이 ‘하나’였던 몇 안 되는 기억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우리 다시 강아지를 키워볼까.’
이 막연한 상황에
왜 그런 무모한 생각이 들었는지
그때는 몰랐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가족이 다시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어린 날의 기억으로 돌아가고 싶은 희망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동생이 정말 ‘괴물’이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늘 “미친놈”이라 부르면서도
끝내 믿고 싶었다.
나는 그저 가족들의 사랑을 바랐을 뿐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무턱대고 강아지 분양소로 향했다.
아빠는 못마땅해했지만,
엄마가 요즘 너무 우울해하고 있다며 핑계를 댔다.
결혼 후 집을 떠날 나 대신
엄마 곁에 작은 생명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하니 결국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낮잠을 자고 있던 아기 강아지들 사이에서
유독 눈이 반짝이는 말티푸 한 마리가 있었다.
유난히 활발했다.
'이 아이는 꺼져가는 우리 가족의 불빛을 다시 켜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 반차 썼어. 강아지 보러 갈 거야!어디야?”
들뜬 목소리 였다.
오랜만에 동생이 귀엽다고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케이지 문을 열고 작은 생명체를 품에 안았다.
인형처럼 작고 따뜻했다.
엄마와 동생이 해맑게 웃었다.
그 작은 생명체가
나에게도 미소를 띄우게 만들었지만
나의 시야에는 그 작은 생명체를 보며
해맑게 좋아하는 엄마와 동생의 모습을 열심히 담았다.
그 웃음이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기고 싶었다.
엄마에게 말했다.
“강아지 이름 엄마가 지어줘.”
“결혼하면 나가니까, 엄마가 키워야 하잖아.”
엄마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았다.
“해피”
그리고 강아지를 향해 말했다.
“우리 집에 행복한 일만 생기게 해줘.”
그 말은 해피에게 한 말이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아니 어쩌면 자신에게 건네는 말 같았다.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빠도 피식 웃었다.
가족이 한 주제로 웃는 저녁이.
그저 ‘평범함’이 이렇게 따뜻할 줄 몰랐다.
며칠 후 상담가가 말했다.
“동생이 요즘 강아지 얘기만 해요. 엄청 예뻐하던데요.”
그 말은 마치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관찰 해보라고 했던 상담가가
'동생은 괜찮아요. 반사회적 인격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끝없이 추락하던 우리 가족에게
작은 희망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정말로, 이번엔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리고 희망을 느끼던 찰나
상담가가 말했다.
“결혼을 해서 독립하더라도,
가족을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진짜 독립이 어렵습니다.
이제 동생은 따로 상담을 진행할게요.”
그 말은, 가족을 놓아주라는 이야기 같았다.
그런거 였다.
놓지 못하던 건
가족들이 아니라 내 자신이 였음을.
'나는 정말 몰랐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 앉아있는
상담가의 표정에서
단호함과 연민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날 밤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해피가 내 머리 맡에서
작은 체구로 우리 집에서 제일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것을 느끼며
나는 깨달았다.
‘가족들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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