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나에게 돌아가는 길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중>, 昀[햇빛 윤]

by 햇빛 윤


그 상담 이후, 내 삶의 방향을 조금씩 수정해갔다.


동생은 나와 상담을 따로 다니기로 해놓고,

결국 혼자 상담을 가지 않았다.


전 같았으면 “함께 가자"라며 다독이거나

억지로라도 데리고 갔을 텐데,

이번에는 애써 모른 척했다.


동생이 혹시 지금도 사채를 더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상담으로 등을 떠밀지 않은 순간을

훗날 후회하게 되는 건 아닐지


수많은 불안과 질문들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사람은 스스로 인지하지 않으면,

아무리 끌고 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바랐다.


동생이 성장하기를.

설령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를지라도

동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동생이 또 어떤 일을 벌인다 해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

엄마와 아빠의 선택이고,

그들의 몫이라는 것 또한

이젠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손에 움켜쥐고 있던 가족들을

조금씩, 조용히 놓아주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홀로 설 준비를 서서히 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해피가 집에 온 이후

집안 분위기는 날마다 눈에 띄게 바뀌어갔다.


퇴근해서 문을 열기만 하면

부정적인 말들로

공기를 무겁게 만들던 아빠는

해피의 마중에 멋쩍게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늘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던 엄마도

해피가 장난감을 물어다 주면

오랜만에 거실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가족과 섞여 있는 것이 어색해

늘 방 안에만 갇혀 있던 동생도

거실에서 해피와 장난치느라 분주했다.


샌님은 지금도 종종 말한다.

“해피 데려온 건 신의 한 수였어.”


그 말처럼

내가 비우고 떠날 자리들을

해피가 더 따뜻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

가족들과 상의 끝에

나는 독립을 하기로 결정했다.

샌님과 살림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이삿날,

내 방의 가구와 짐을 빼내면서

혹시 엄마가 울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엄마는

빈 장롱 속으로 들어가는 해피를 보며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다행이라는 마음과

왠지 모를 서운함이 동시에 스쳤다.


그러나 이 마음 또한

딸이라면 누구든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동생은 친구들을 불러

정성껏 내 이사를 도와주었다.


몸은 고됐지만

이사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그날 밤,

첫 신혼집의 침대에 누워

낯설고도 어색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평범하게 독립을 했구나.’


늘 상상하던 ‘독립’은

가족들과 연을 끊는 장면들이었다.


내가 가족들에게

언젠가는 넌덜머리가 나서

내 스스로 떠나거나

가족들과 싸워서 쫓겨나는 장면들뿐이었다.


좋은 장면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떠나왔다.

눈물이 날줄 알았었는데 울지 않았다.


감정이 무뎌진 걸까,

아니면 이 안도감을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서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불안 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다.


내게 편안함은 언제나 사치였고,

행복은 누군가 허락해 줘야만 누릴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니 그 행복 속에 잠시라도 머물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인정하려 한다.


나도 행복해도 되는 사람이다.

나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


나는 독립과 함께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천천히 배워가고 있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중>, 昀[햇빛 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