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첫 상담을 받은 엄마와 아빠는
“상담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라며 화를 냈다.
엄마는 상담가가 다짜고짜
“아이를 잘못 키웠다"라고
나무랐다며 억울해했고,
아빠가 상담가에게 화를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상담 센터 문턱을 넘게 한 건 나였는데,
단 한 번의 대화로
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게 허무했다.
그 후로 나는
다시 동생과 단둘이 상담을 받으러 다니게 되었다.
상담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상담가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희 부모님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상담가는 잔잔한 미소로 말했다.
“저는 그저 사실 그대로 물었을 뿐이에요.
두 남매가 집에 있는 걸 불편해하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냐고요.”
“아버님은 누나가 동생을 아들처럼 키운 걸 미안해하시지만,
지나간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셨고요.
어머님은 웃고 계시더군요.
지금은 웃을 때가 아니잖아요.
속내를 많이 감추고 계신 것 같았어요.”
"그리고 두 분 다 자식들이
집을 불편해하는 것에 대해 서운해하셨어요."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예상되었던 엄마, 아빠의 반응 보다
충격이었던 건
‘동생도 집을 불편해한다’는 사실이었다.
“동생은 왜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집인데?”
상담가는 조용히 말했다.
“누나도 집에서 밥 먹으면 자주 체한다고 했죠?
동생은 밥을 먹고 화장실에서 다 토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식탁은 언제나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솔직히 직설적으로 말하면
내겐 계모, 계모의 남편,
그리고 계모의 아들과 함께 앉아 있는 식탁 같았다.
나는 그 숨 막히는 공기를 삼키며
엄마를 미워하고,
때로는 증오하며 버텼다.
그런데 동생은
그 공기를 토해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생도 늘 그 숨 막혔던 공기를
억지로 마시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동생을 정신과에 데리고 가기 싫어했던
어제의 나를 미워했다.
“내일 동생 데리고 정신과에 갈게요.”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상담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조용히 말했다.
“동생의 엄마가 되려고는 하지 마세요.
부모님이 함께해 주면 좋겠지만,
지금은 누나로서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 이상은 안 돼요.”
그 말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동생은 나를 엄마처럼 의지하고 있는데
나는 누나의 역할만 하라니.
그 경계가 너무 잔인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부모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누나의 몫일까.’
가족을 위해 해온 모든 것이
사실은 경계 밖의 일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생에게 구토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그냥 침묵했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동생을 데리고 정신과에 갔다.
의사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하더니 말했다.
“예를 들자면, 포르쉐로 택배 일을 하고 계시네요.”
과거의 동생이
‘영재’였던 시절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동 조절이 어렵고,
머리가 너무 빠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때 동생이 말했다.
“저는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온 게 아니라
그냥 우울해서 온 거예요.”
의사는 동생의 태도에 놀란 듯 보였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동생과 대화를 나눴다.
“가족에게 준 피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피해요?
저 다 갚았어요.”
“지금 옆에 있는 누나의 마음은요?”
“제가 그렇게 큰일을 저질렀나요?
저 여기 추궁 받으러 온 거 아닌데요.”
의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나는 동생의 눈빛이
또다시 변하는 걸 느꼈다.
차가운, 살기 어린 눈빛.
의사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약을 일주일 치 처방하겠습니다.
잠시 보호자 분과 이야기 좀 나눌게요.”
동생이 나가자
의사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그 말 한마디가
마치 얼음장 같은 내 속을 녹였다.
피 섞인 가족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던 그 한마디.
‘괜찮냐고.’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상담받고 있어요.”
의사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내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단호히 말했다.
“다시 이런 일이 생겨도 가족을 도와주지 마세요.”
나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누군가 죽는다면요?”
“죽어도요.”
의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칼에 잘라 말했다.
내가 가면을 쓴 걸 아시는 듯
내 가면을 말 한마디로 가볍게 툭 깨트렸다.
그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나를 위한 말임을 알기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말이 예언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미친놈.”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동생은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의심됩니다.
소견서를 써드릴게요. 큰 병원에 가보세요.”
나는 그 순간 나에게 모순을 느꼈다.
그렇게 들춰내고 싶었던
우리 가족의 모습을 들춰냈는데
다시 묻어야 될 것만 같았다.
오히려
가족의 진실을 벗겨냈는데도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엄마랑 아빠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더 했을까.’
'알면서도 직면할 자신이 없었던 걸까.'
마주 보는 순간,
우리는 모두
같이 가라앉게 되는 거였다.
나는 동생과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