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남은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중>, 昀[햇빛 윤]

by 햇빛 윤


독립을 한 지 어느덧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문득, 아무 예고 없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지난 과거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고,


이야기의 중반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가족들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과거를 끄집어내는 동안에도

현재의 가족들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흔들었고,


그 흔들림은 고스란히

이야기 속에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 지인이 말했듯

연을 끊지 않고 관계를 유지한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양날의 검 같았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가

가족을 손가락질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내 입장과 시야에서만 보았던 상황들이


사실은

보고 싶은 대로 믿고 싶었던

나의 아픔과 상처였다는 것을.


그렇게 믿고 싶었고,

그렇게 보고 싶었다.


이제 와서

가족들의 마음 또한

사랑이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부정하고 싶었던

내 어리석은 마음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독하게도 삐뚤어진 마음이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마음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

진짜 나임을 인정하자

그제야 가족들의 솔직한 모습이

조금씩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혼을 한 후

부모님 집에 가서 식사를 할 때면

늘 동생 앞으로 쏠려 있던

맛있는 반찬들을

이제는 내 앞에 따로 내어주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도 나를 독립시킨 후

빈자리를,

혹은 그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어떤 마음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았다.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늘 내 양손이 무거워졌다.

엄마는 빠짐없이 음식을 싸주셨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며

“도둑이네.”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맛있는 걸 먹는 날이면

괜히 나를 태우러 오곤 했다.


남편이 퇴근이 늦어

혼자 밥을 먹는 날이면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는

조용한 내 집 식탁이 좋다가도,


문득

‘저주받은 식탁’이라고 표현했던

부모님 집에서의 식사 시간이 떠올랐다.


이제는 내가

한 가정의 엄마가 될 수도 있는

입장이 되어

가정을 꾸려가다 보니

계속 엄마가 스쳐 지나갔다.


'엄마라면 어땠을까.

엄마라면 다 했을 텐데.

엄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그러다 문득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시간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엄마는

너무나도 가난한 집에서 자라

밭에 있는 무를 뽑아

흙을 털어내 먹으며 컸다고 했다.


철없던 나는

“흙 먹으면 맹장 걸려.”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애써 웃으며

“간식이 없었어. 근데 달았어.”

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늘 한 상 가득한 식사를 차려주었다.


나는 그런 식사가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자랐고,

지금도 혼자 밥을 먹더라도

나를 위해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친구들은 말한다.

“너네 엄마 도시락은 정말 맛있었지.”


그랬다.

나는 늘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들고 다녔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내가 먹고 싶다던 간식들을

항상 가득 챙겨주셨다.


스스로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나서야

매일같이 식사를 준비해 주던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불안장애로 인해

식이장애 증상을 보이던 때에도

엄마는 내가 먹을 수 있는 반찬을 찾아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다 큰 딸이

“못 먹겠어”, “무서워”라며

반찬 투정을 해도

엄마는 군소리 없이

다시 다른 반찬을 만들었다.


엄마의 음식은

먹을 것이 없어 무를 뽑아 먹고 자랐던 엄마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그 사랑을

당연하다는 듯 여기며

늘 다른 것들만을 바랐다.


그리고 지금 와서

내가 식사준비를 하며

내 음식에서

엄마의 옛 맛을 찾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가 미워졌다.


그 미안함에

매운 닭발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먹자며 만들어 둔 닭발이,


예전처럼

맵고 칼칼한 맛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었던 것이

미안해서

엄마가 뿌듯해할 때까지

접시에 닭발 뼈를 한가득 채웠다.


한때는 엄마에게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듣고 싶었지만,


나 또한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이런 어리숙한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 역시

나에게 어리숙한 방식으로

마음을 건네고 있다는 것도.


이런 엄마의 마음이

내 마음 보다

더 시려 보였다.


그 시린 마음만큼

집으로 돌아가는 내 양손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나는 요즘도

“나는 도둑이야.”라고 말하며

엄마가 싸준 음식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중>, 昀[햇빛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