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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Jan 13. 2022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부장에게 그만둔다고 얘기를 하고 나서는 지난번 윗선과 실랑이를 벌이다 챙겨놓은 쇼핑백을 챙기고 차에 올라탔다. 그러던 찰나에 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미리 그려둔 각본대로였지.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고. 누구랑 싸웠냐고. 데스크의 다급한 목소리였지만 아마 눈치 빠른 부장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미리 며칠 전부터 언질을 주기도 했으니까. 일이 재미없다는 반복된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이제 이 인간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부장도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고는 당장 짐을 싸지는 말고 하루 이틀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국장과 임원들이랑 얘기를 좀 해보겠다고. 뭔 얘기를 해보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고집대로라면 부장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짐을 싸러 가려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예우는 지켜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한발 물러났다. 그동안 버텨온 것도 부장의 덕이 크기 때문에 그 은혜를 저버리면 안 되겠지. 집에 돌아와 원래 퇴사의 느낌이 이런 건지 조금은 어리둥절한 기분을 가지고 거실에서 뒹굴고 있으니 저녁 6시쯤 다시 부장에게 연락이 왔다.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테니까 사장님이 다시 생각해보란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고.” 생각보다 끈질기게 매달리는 탓에 적잖게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어떠한 협상도 필요 없는 사업가처럼 단호하게 대답했다. 

 “생각 끝났어요. 일이랑 조직에 정나미가 다 떨어졌거든요.”

 2주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당장 그만둘 줄은 몰랐다. 그때의 심정만 하더라도 회사가 뭐 같아도 선배들 말처럼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이 어쩌면 지혜로운 판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 와중에 나는 달력에 적혀있는 구청장 저녁 만찬 약속을 보고는 한숨을 뿜으며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아무리 퇴사를 한다 해도 내가 잡은 약속을 내가 안 가면 안 되겠지. 

 퇴사를 확정 짓고 맘 편히 술을 마시면서 이제 높은 양반들 장단 맞춰주는 것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흐뭇해졌다. 어느새 그런 행위가 내게는 손쉬운 작업들이 되기도 했지만. 어려울 것도 없었지. 경청하는 표정들과 집중하는 눈빛들. 그리고 가끔 한 번씩 고개를 끄덕여 주면 되고 억지로 궁금한 걸 하나씩 떠올려 질문을 하거나 자주 웃어주기만 하면 된다. 한 가지 피할 게 있는데 아는 척하는 건 금물이다.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잘난척하는 행위니까. 출입처 사람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타사 선배들만 자리에 남겨졌는데 평소 친하게 지낸 선배들이라 내 퇴사 소식을 미리 알렸다.

 “농담이지?”

 비밀로 해달라고는 했지만 사실 비밀이 되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나와 같이 있던 타사 선배들은 이날 자리에 나온 모든 얘기들을 단톡방에 올리겠지. 내 퇴사 소식도 그 정보보고 안에 들어있을 것이고. 가끔 이렇게 배신 비슷한 처신들을 할 때마다 사람들 사는 세상에서 인정 없는 모습 같지만 기자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하루 일과의 일부분일 뿐이다. 

 “근데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이제 뭐하려고?”   

 가만히 있던 선배가 기자다운 면모를 보이며 퇴사자들에게 가장 끔찍한 현실을 되짚어 주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갑작스럽게 머리가 굴려보았지만 결국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실 내가 아직 잘 모르는 답이기도 했고.

 “아뇨. 뭐 될 대로 되겠지요. 근데 일단 제가 살아야겠어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이 되어서는 아침부터 곳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수십 통이 넘는 전화였는데 첫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이상한 정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내가 퇴사를 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소식인가? 아직 짐을 싸려면 하루 남았는데 너무 일찍 소문이 퍼져 버린 건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보단 내가 그만둔다는 사실이 이제는 현실로 느껴져 조금씩 감격에 겨워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연락도 있었다. 원래는 기자 선배였지만 어느새 공무원이 된 선배의 연락이었다. 

 “이제 일이 재미없지?” 

 점쟁이처럼 내 심정을 읽었다. 하긴. 문예창작과 출신 선배라 평소에도 신춘문예와 문학 얘기를 하면서 유일하게 글과 관련된 교감을 많이 나눈 선배였으니까. 정답을 거의 맞혔다고 말하자 선배도 본인의 옛날 생각이 났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매년 떨어지는 신춘문예 쓸 때가 가장 행복했지만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자식들 키우며 공무원 돼있다고. 현실과 타협한 선배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니 위로와 응원의 대상이 바뀔 뻔했다. 

 그동안 천직이라고 우겨왔던 내가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는 게 수상했는지 누군가는 회사에 안 좋은 소식이 있는 건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했다. 물론 회사에 관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도 허다했지만 그렇다고 하루면 소문을 다 퍼트릴 사람들에게 내가 몸담았던 회사의 험담 비슷한 발설을 한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일일이 말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그렇게 됐어요.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행복하세요. 건성 대답하고 서둘러 통화를 끊어버렸지. 

 짐을 싸기 전날이기도 한 그날 저녁, 술에 취하면 나오는 숨겨진 감정들이 있을지 핑계 삼아 술잔을 채우려 했지만 참기로 했다. 어려웠지. 그러고 보니 계란 한 판이 채워지고 있던 지난 세월 동안 술 마실 명분만 생각하더라도 날씨가 좋아서, 흐려서, 더워서, 추워서, 비가 와서, 비가 그쳐서. 이 날의 명분은 다른 어떤 날보다 설득력 있고 납득할만한 위로주의 명분이었지만 곧바로 누워버렸다. 진정한 퇴사 당일날인 다음날 축하주로 적시자면서. 

 초저녁에 누워버린 탓인지 혼자 있는 밤이 점점 더 적적해질 때는 내 심정을 수치로도 계산해보기도 했다. 그만두는 이유에 관해서 어떤 부분의 비율이 어느 정도씩 차지하는지. 먼저 회사가 싫어진 이유에 관한 지분은 4할 정도로 계산했다. 내가 그동안 자부심으로 가져왔던 언론사에 대한 실망감이 주 지분을 차지했고 회사 곳곳에 숨어있는 게으른 선배들을 볼 때마다 혹시 나도 그렇게 될까 봐 소름 끼치게 두려웠으니까. 예상보다 높은 비율이었지. 

 그리고 남은 6할을 단순히 일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확정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건방지고 자만심만 가득한 사람으로 보겠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고 나서는 기사 생산을 위해 쓰는 글이 그 사람만의 특유한 문체가 담긴 아름다운 글이 아닌 그저 형식과 틀에만 박힌 글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됐고 그때부터는 내 하루하루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결국 기자도 일반 회사원이라는 생각이 들 때부터는 그동안 내가 기사를 쓰면서 느낀 열정이 조금씩 사라져 버렸고 금방 남김이 없어졌지. 그래도 그동안 버텨온 이유를 생각하자면 기사에 대한 작업의 흥미보다는 사회에 속한 언론의 사명감은 항상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손 놓은 게으름쟁이는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과적인 생각을 하고 나서는 다시 문과 출신 꺼벙이로 돌아와 내 퇴사에 관한 간단한 소회를 매듭지었다. 

 퇴사 당일, 아침에 눈을 뜨고선 짐만 싸고 바로 나올 것이니 대충 씻은 시늉만 하고 회사에 당당하게 들어가 내 짐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퇴사하는 날에도 가장 일찍 출근해 신문 정리를 하고 있다.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니깐. 속속 출근하는 선배들을 볼 때마다 겉치레 가득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들 중 누군가는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 같은 목소리를 못 내줘서 미안하다는 표현인 건지 별다른 신경 쓰지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며 짐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내 책상 위에는 내가 쓰고 있던 회사용 노트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사이에 인사를 못 나눈 선배들도 하나둘씩 내게 다가와 안부 인사를 전했고 정확히 3명의 선배가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 선배가 뭐가 미안해. 됐어. 나중에 연락이나 줘요. 술이나 마시게. 호탕한 척 대답하고 말았다. 일이 재미없어서 그만두는 이유가 큰데 시기적으로 내가 조직과 윗선들에게 진상 부린 해프닝이 강하게 자리 잡았는지 대부분의 선배들은 저번에 내 기사가 잘린 것 때문에 내가 그만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동료들의 미안해하는 눈빛들이 어느새 부러운 눈빛으로 변해 그 눈빛들을 한눈에 받으며 최종 관문인 사장실 문을 열었다. 마지막이니 제발 성질부리지 말라는 주문을 내게 넣으면서. 푹신한 소파에 앉자마자 3초 전 다짐했던 내 각오들이 쉽게 깨질 것으로 예감했다. 그의 눈빛을 보자마자 날카로운 창 같은 언변으로 내 방패를 두드릴 것 같았으니까. 

 “왜 이러는 거야. 우리 회사 100주년 때쯤에는 네가 사장 달고 있겠다며. 모든 사정 봐준다고 했는데도 다 거절했더구먼?”

 “그렇게 됐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이유를 말해봐. 상도 받고 앞날이 창창했잖아.” 사장의 목소리 톤이 한순간에 진지해졌다. 

 “일이 재미없어진 것도 있지만 평기자들 기사 귀한 줄도 모르는 이런 회사에 오만 정 다 떨어졌고 사실 이런 언론사의 미래는 안 봐도 뻔하다 생각하거든요.” 마지막 자리인 만큼 그동안 사장에게만큼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내뱉어버렸다.    

 “이 녀석아. 그런 건 기자들한테 비일비재한 거야. 나 때는 없었는 줄 알아?” 

 이 말을 당연하게 내뱉는 사장을 보자마자 그만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스쳐갔지. 그리고 이때부터는 화생방 훈련이라도 끝마치듯 황급히 그 방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요. 항상 건강하세요.” 

 그저 잘 계시라는 마지막 인사를 던지고 나서는 회사를 나와 차에 짐을 싣고 한동안 시동을 걸지 못했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혼자 우주에 있던 여주인공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멍한 상태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순간에 느끼고 있던 감정이라고는 하나 없이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후에는 그 느낌이 허탈감으로도 변해 이러다 자칫 울컥한 감정들에 휩쓸려 눈물을 흘릴 것 같았고 내가 지금 울면 기쁨의 눈물인 건지 아쉬움의 눈물인 건지 걱정의 눈물인 건지 고민했다. 결국 눈물 흘릴 내 모습을 상상하니 손발이 오그라들어 이내 정신을 차리고선 아무렇지 않게 시동을 걸었다. 적당한 위로의 개념으로 여자친구 몰래 좋아하는 걸그룹의 노래까지 재생하니 지난 몇 년간 술 취했을 때도 나오지 않은 흥으로부터 시작해 음역대 낮은 이상한 목소리로 노래까지 따라 부르고 있었다. 

 다시 노래가 잔잔한 팝으로 바뀌자 내 시선은 조수석에 있는 짐 가방으로 향했다. 안에는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기자상 상패가 반짝거리고 있었는데 그걸 보다가 내가 이제 백수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바로 다음날부터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이 생각을 벌써 하기는 싫었는데. 아. 이제 뭐해야 되냐. 머리의 가려운 부분을 박박 긁으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매번 그랬듯이 지금 내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걸 하나씩 풀어내면 결국은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 순간 가장 먼저 풀어야 하는 문제를 먼저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엔 무슨 술을 마셔야 하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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