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양 시인의 「왼편」
「왼편」
한백양의 시 「왼편」은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서 ‘집의 왼편’이라는 공간적 설정을 통해 현실의 복잡하고 다정다감한 감정을 담아낸 작품으로서,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관계와 삶의 애환을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게 시적 울림으로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낡고 오래된 빌라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과 편 가르기를 풍자한 깊은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시의 공간적 배치는 명확하게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왼편’은 시적 공간이자 상징으로, 불안정함과 어색함을 의미합니다. 왼손이 서투르듯, 왼편에 있는 빌라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삶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왼편」의 빌라들은 소외된 사람들,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정함을 상징하며, 사회적 약자와 주변부를 의미합니다.
이와 대비되는 ‘오른편’은 ‘오래된 미래’로, 제시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거나 희망적인 이미지로 비칩니다. 오른편의 미래는 주류와 안정된 계층을 상징하며, 기존의 질서와 권력을 대변합니다. 이 시는 공간과 방향성의 상징성을 통해 우리 사회 삶의 이중성, 즉 좌와 우의 이념적 대립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빌라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일상 속 갈등의 전형입니다. “너는 왜 그래, 나는 그래”라는 대화 속에는 고단한 삶의 무게와 인간관계의 갈등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런 갈등 속에서도 「왼편」 빌라 간의 연대감이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왼편」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늙은 새처럼 지지배배 떠들면서도 일제히 내 왼쪽 빌라의 편이 되는”이라는 구절은 상처받고 불완전한 존재들끼리 모여 만들어 내는 묘한 동질감으로서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계층이 서로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왼편」 사람들의 연대는 온전하지 않은 까닭에 “불면증을 지형적인 질병으로”라는 구절로 말하면서 왼편 사람들의 고립감과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 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라는 구절에서는 이들 사이에도 온전한 소속감이나 유대감이 결핍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왼편」 사람들의 불면증을 “지형적인 질병”으로 비유하며, 불면증이 단순히 개인적 문제를 넘어, 공간적 특성을 갖춘 사회적 문제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또 “같은 무게의 불면증을 짊어진 그가 내 가족이고”라는 구절과 “따뜻하고 뭉그러진 바람이 몰려든다”라는 표현은 이런 갈등 속에서도 작은 연민과 연대가 존재함을 상징하며, 현실적 타협과 공존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왼편」은 고독과 외로움이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에게 서로의 공감을 이어주는 확장의 고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가끔 소고기를 사준다면 나는 그가 보여준 노력의 편이 되겠지”라고 말하며 물질적 이익이나 현실적 도움에 따라 연대와 지지의 대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풍자합니다. 이는 정치적 지지층이 현실적 혜택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같은 무게의 불면증을 짊어진 그가 내 가족”이라는 구절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뉜 사회 속에서도 결국 인간적인 고통과 외로움은 비슷함을 암시합니다.
「왼편」의 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부서진 화분에 테이프를 발라두었다고”라는 표현은 고쳐지지 않는 문제들을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투르고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고치려는 인간의 노력을 담고 있으며,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밥을 종종 주었던 길고양이가 가끔 빌라에서 밥을 얻어먹는 건 다행”이라는 구절은 불안과 갈등 속에서도 작은 온정을 찾으려는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따뜻한 여운과 반전의 미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왼편」은 표면적으로는 일상 속 불안을 그리지만, 우리 사회의 좌와 우의 대립 속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표면적인 수선에 그치는 편가르기의 현실을 풍자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왼편」에 선 사람들의 애환을 통해 삶의 불완전성과 인간관계의 연대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으로서 특히 공간적 대비와 상징을 통해 정치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단순한 현실 묘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사회적 불안 속에서도 길고양이가 밥을 얻어먹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 간의 작은 온정이 여전히 존재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통해 독자에게 큰 시적 감동의 공감을 끌어낸 좋은 작품입니다. 2025.03.23./kimseonbi/김승하 시인
집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다
오랫동안 빌라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이 한 번씩 크게 싸우곤 한다
너는 왜 그래, 나는 그래, 오가는
말의 흔들림이 현관에 쌓일 때마다
나는 불면증을 지형적인 질병으로
그 가족들을 왼손처럼 서투른 것으로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집의 왼편에 있는 모든 빌라가
늙은 새처럼 지지배배 떠들면서도
일제히 내 왼쪽 빌라의 편이 되는
어떤 날과 어떤 밤이 많다는 것
내 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직 잠들어 있을 내 편을 생각한다
같은 무게의 불면증을 짊어진 그가
내 가족이고 가끔 소고기를 사준다면
나는 그가 보여준 노력의 편이 되겠지
그러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고
오른편에는 오래된 미래가 있으므로
나는 한 번씩 그렇지, 하면서 끄덕인다
부서진 화분에 테이프를 발라두었다고
다시 한 번 싸우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하고 뭉그러진 바람이 밀려든다
밥을 종종 주었던 길고양이가 가끔
빌라에서 밥을 얻어먹는 건 다행이다
고양이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제 편이 되어줄 사람들은 싸운 후에도
편이 되어주는 걸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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