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낭송
https://youtube.com/shorts/DxcqJLz0B_s?si=JsDUlC-3Z-SSNzyQ
양파 껍질을 까본 사람은 알지
양파의 둥근 생애를 손끝으로 더듬으며
울컥, 눈물 쏟아 본 사람은 알지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고 또 다른 내가 되는,
벗겨도, 벗겨도 눈물 콧물 쏟게 하는 말들
미움도 사랑하는 마음도 실체가 없다는 듯
가슴에 겹겹이 침묵을 감싼 양파들
겉껍질을 끓여 차로 마시면 혈액 순환에 좋지
하얀 속살은 단맛을 돋우고 잡내를 숨겨주지만
지나치면 텁텁해 요리의 참맛 느낄 수 없게 하지
자신의 존재 드러내고 싶은 말 많을수록
짧은 침묵으로 말해야 하는 일도 있지
흙 묻은 껍질 깨끗하게 씻어내고
한 겹씩 양파 껍질을 벗겨 본 사람은 알지
삶은 어떻게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인지
진실이거나 비밀이라고 하는 말들,
양파 껍질 벗기듯 한 꺼풀씩 벗겨보면
결국 침묵만 남은 빈 껍질뿐이지
주방 한쪽에 쭈그려 앉아 양파를 까면서
하루 종일 눈물 콧물 흘려 본 사람은 알지
시작 노트: 시 「양파」를 읽는 당신께
이 시는 수백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 한쪽, 쭈그려 앉아 양파를 까던 어느 날—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떠오른 감정들을 그대로 옮겨본 시입니다.
양파 껍질을 한 겹씩 벗기다 보면 보이지 않던 삶의 결이 손끝에 스칩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었던 것들, 지나치게 내보이면 오히려 맛을 흐리는 감정들—그런 것들이 겹겹이 마음에 쌓여 있었던 건 아닐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양파처럼 우리는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눈물이 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남겨지는 것이 더 많은 삶 앞에서, 무언가를 껍질 벗기듯 조심스레 열어 보이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고 또 다른 내가 되는’ 존재로서의 양파는, 사랑과 미움, 진실과 비밀, 말과 침묵 사이를 유영하는 인간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주방이라는 일상의 공간 속에서 눈물 흘리는 손끝의 체험을 시로 옮겨와, 조용한 울림으로 당신의 마음을 적시고자 합니다.
삶을 겹겹이 감싸고 있는 껍질들을 하나씩 벗겨내며, 결국엔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것들—
그것이 우리 삶의 ‘유종의 미’ 일지도 모릅니다. 말보다 침묵이 깊어지는 순간, 우리가 한 발짝 더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이 시를 읽는 당신의 삶 속에도 껍질처럼 덮어둔 이야기 하나쯤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벗기다 조금은 따뜻한 눈물을 흘리셨으면 합니다.
2025.05.18 / 김승하 / kimseon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