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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골뱅이!?

어머니에게 처음 부린 짜증

by 선옥

간단한 샤워였지만, 오랜만에 따뜻한 물기가 몸을 감싸며
그간 쌓였던 땀과 기름기를 흘려보내는 감촉에
기분은 금세 상쾌해졌다.

무균실은 3인실이었지만 각 침상마다 개인 TV가 놓여 있었다.
리모컨에 이어폰을 연결해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나는 바깥에서 사용하던 헤드셋을 소독해 가지고 와 조심스레 방송을 틀었다.

하지만 침대에 몸을 눕히자 그 상쾌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중충한 병실의 분위기 탓일까,
TV 화면도, 소리도 금세 지루하게 느껴졌고
결국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보호자 없이 무균실에서의 첫날이 흘러갔다.

이튿날, 어머니가 식사 시간에 맞춰 무균실로 들어오셨다.
그 모습은 간호사들과 다를 바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에 둘러싸인 채,
마스크와 모자에 얼굴이 가려져 잠시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했다.

무균실에 들어왔을 땐 아직 몸 상태가 괜찮았다.
그런데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입안이 다 헐어 음식을 씹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졌고,
식욕도 뚝 떨어졌다.

게다가 무균식은 우리가 알던 음식과는 전혀 달랐다.
조리를 마친 후에도 고온 열탕 소독을 한 번 더 거치기 때문에
음식의 식감과 맛은 모두 낯설게 변했다.

함박스테이크라고 쓰인 메뉴는
씹을수록 스펀지를 입에 넣은 듯한 질감이었고,
보자기에 싸여온 식판을 여는 순간 퍼지는 소독약 냄새는
구역질을 유발했다.
식욕은 더더욱 사라졌다.

혈소판, 호중구 같은 면역 세포들의 수치가 오르길 바라며
촉진제를 맞아보았지만,
계속되는 항암제와 항생제의 투여에
수치는 오르기는커녕 더 떨어졌다.

면역체계가 무너진 몸은
작은 상처 하나에도 쉽게 낫지 않았고,
그 모든 고통이 내게는 더 크게, 더 날카롭게 다가왔다.

몸이 아프고, 입맛이 없고, 마음도 지쳐가던 무균실의 어느 날.
어머니는 내가 먹고 싶어 하던 통조림 골뱅이를 조심스레 꺼내셨다.
무균실에서는 열탕 소독이 어려운 음식 대신
통조림 같은 완제품은 허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기 전, 어머니는 간호사 선생님께
“혹시 이건 먹어도 될까요?” 하고 조심스레 여쭈셨고,
선생님은 “설사를 유발할 수 있어 안 드시는 게 좋아요.”라고 답하셨다.

나는 결국 골뱅이를 먹지 못했다.

그건 단순한 반찬 하나가 아니었다.
이 지독한 병실에서 유일하게,
내가 스스로 원했고 입에 넣고 싶었던 음식이었다.
그 한 가지를 허락받지 못하자 마음이 무너졌다.

통조림 식품은 괜찮다면서, 왜 굳이 물어봤을까.
그 짧은 순간, 무너진 마음은 어머니를 향한 분노로 번졌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몸이 더 나빠질 수 있으니까, 나가서 먹자.”

하지만 내겐 그 골뱅이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건 무균실에서 유일하게 원하는 감각이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무균실을 나갈 때까지,

말없이,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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