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대머리
무균실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1인실 자리가 나지 않아 3인실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호중구 수치는 여전히 500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촉진제를 맞아도 내 몸속 면역세포들은 바닥을 찍은 채 좀처럼 올라올 기미가 없었다. 염증은 가라앉지 않았고, 헐어버린 입 안은 액체조차 넘기기 어려울 만큼 통증이 심했다.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항문이 헐어 좌욕을 해야 했고, 일상적인 움직임조차 고통이 되었다.
그 와중에 가장 큰 변화가 하나 찾아왔다. 머리카락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늘 암 환자들이 머리를 민 모습을 보며, 그것은 병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가능한 한 머리를 자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베개 위에 뭉텅이로 빠진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어깨 위로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졌다. 머리카락은 한 번에 빠지는 게 아니었다. 시간차를 두고 듬성듬성 빠져나갔고, 그렇게 만들어진 비어 있는 머리는 나 자신도 마주하기 괴로울만큼 흉한 몰골을 만들어 머리를 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시 병동에는 이발을 도와주는 이발사 아저씨가 있었고, 삭발만 가능했다. 비용은 오천 원.
머리를 자르기 전, 간호사 선생님께서 나보다 한 살 어린 환자가 모히칸 스타일로 잘라달라고 했던 이야기를 웃으며 들려주셨다. 나도 따라 웃었지만, 속으로는 이발사 아저씨께 짧게라도 머리를 남길 수 있냐 여쭈어 보려 했었는데.. 라는 생각을 조용히 삼켰다. 그냥 묻지도 말고 밀자.
나는 무균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였기에, 이발사 아저씨께서는 살균 소독을 마친 후 마스크와 소독가운, 모자까지 갖춰 입고 무균실 안으로 들어와 주셨다. 우리는 병실 화장실로 향했고, 머리카락은 가위질 없이 바리깡 하나로 잘려나갔다. 초코송이처럼 길게 자란 내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툭툭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길었던 머리는 미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 밀고 나서 본 나의 머리는 어느 부분은 민머리가 되었고, 어느 부분은 짧게나마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다. 대머리도, 까까머리도 아닌 어정쩡한 머리. 손으로 쓸어보니 붙어 있던 짧은 머리마저 손바닥에 스쳐 빠져나갔다. 남은 머리칼은 점점 줄어갔고, 드러난 두피는 참 낯설었다.
스테로이드와 각종 항암제를 맞으며 동그랗게 부은 내 얼굴은, 머리를 밀고 나니 더 동글게 보였다. 마치 동자승 같았다. 머리를 자르기 전에는, 이 일이 내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 두려워 밀기를 거부했지만, 막상 머리를 밀고 나니 베개와 이불이 머리카락으로 도배되는 걸 보지 않아도 되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는 고통에서도 벗어나 오히려 홀가분하였다.
무엇보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날 것이고,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선생님께 언제쯤 퇴원하냐 여쭈어 보았을 때 늦어도 9월에는 퇴원할 거라고 말해주셨기에, 학교에 복학할 무렵이면 머리는 다시 자라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머리를 밀었다는 사실에 슬퍼하지도, 낙담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