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나를 얼마나 이해해 주었나? (1~10점 + 이유)
9점..?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니 어느새 밤 9시. 평소 같았으면 다음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일기와 독서로 하루를 마무리했겠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쏟아지는 잠에 그만 그대로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매일 복용하던 ADHD 약도 먹지 못한 채였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이르게 잠들었고, 눈을 뜬 건 새벽 5시 30분. 푹 잔 듯하지만 몸은 여전히 무거웠고, 알람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출근길에도 졸음은 계속되었고, 물에 들어갔는데도 정신이 또렷해지지 않았다. 오전 7시, 두 번째 수업에서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전날 아침 준비를 하지 못해 아침을 거르고 나왔지만, 배고픔보다 피로가 더 먼저 밀려들었다.
오늘은 평일 중 가장 바쁜 날로 새벽 수업이 끝나고 바로 러닝을 하지 않으면 러닝 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평소 몸이 피곤하거나 지쳐있으면 웨이트는 쉬었겠지만,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터라 러닝은 빼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웜업을 하고, 1km당 5분 30초 페이스로 3km를 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2km도 채 되기 전에 지쳐 멈췄고, 남은 거리는 걷다 뛰다 반복하며 채웠다.
첫날엔 4km, 둘째 날엔 3km, 오늘은 2km.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목표하고자 하는 러닝도 채우지 못하고 새벽에 일어나 웨이트도 못해 오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전이 지나가 버렸지만 괜찮았다. 평소였다면 분명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움직였는데 왜 한게 없이 오전이 지나있지라며 스스로를 자책했을 텐데 오늘은 스스로를 질책하기보다 이해해 주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것도, 계획한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것도 전부 게으른 나의 의지와 정신력의 문제라고 믿었다. 하지만 ADHD 약을 복용하게 되면서, 그게 단순한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나의 몸을 하나의 기계로 비유를 하자면 뇌는 CPU(중앙처리장치)이고 근육, 체력이 발전소라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동안 CPU의 온도를 낮춰주는 쿨링 시스템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 나는 스스로 발전소의 역량이 부족해 기계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제 아무리 발전소의 기능을 높여도 중앙처리장치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기계는 잘 돌아가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지금은 안다. 내 CPU의 온도를 낮춰주는 약물 ‘아토목세틴’ 덕분에, 나는 비로소 내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내 생각과 감정을 꺼내며, 나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모든 계획을 지키진 못했지만, 오늘만큼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게 내게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