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
엣지 타워 전망대를 내려오면 대형 쇼핑몰인 ‘더 숍스 앳 허드슨야드(The Shops at Hudson Yards)’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밖으로 나오기 전 나는 그 안에 있는 블루보틀 매장을 먼저 방문했다.
미국 내에서도 비교적 고급 커피 브랜드로 여겨지는 블루보틀은, 특유의 미니멀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산미 중심의 스페셜티 원두를 지향하는 브랜드답게 커피는 주문 후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방식이었다.
연하게 볶은 원두라 묵직하고 고소한 맛은 적지만, 청량하고 깨끗한 마무리감이 인상적이다. 복합적인 향미 덕분에 내 입맛에도 잘 맞아 맛있게 마셨다.
커피 한잔을 마신 뒤 쇼핑몰 밖으로 나서자 눈앞에 거대한 조형물, 베슬(Vessel)이 모습을 드러냈다.
베슬은 허드슨야드 중앙 광장에 자리한 공공 조형물이자 전망 구조물이다. 런던 출신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설계했고, 계단을 직접 걸어 올라가며 다양한 각도에서 허드슨야드와 맨해튼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2019년에 공개되었지만, 반복된 투신 사고로 인해 2021년부터는 1층까지만 접근 가능하며 계단은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 삶을 마감한 이들의 선택엔 애도를 표하지만, 어린아이들도 찾는 관광 명소에서의 사건들은 여러모로 안타깝기만 하다.
베슬은 육각형 구조물로, ‘벌집’ 또는 ‘항아리’처럼 묘사되곤 하지만 나는 마치 커다란 구리 텀블러를 떠올렸다.
맨해튼을 높은 위치에서 전망하라고 만들어놓은 베슬에서 맨해튼 경관을 전망하지는 못하고 베슬 내부에서 1층만 구경하다 허드슨 강을 유람하는 크루즈를 타기 위해 세인트 항구까지 걸어갔다.
4월의 뉴욕은 따스한 햇살과 선선한 바닷바람이 어우러진 봄날이었다. 크루즈를 타러 걷는 길은 아름다웠고, 거리마다 마주치는 장면들은 마치 내가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처럼처럼 느껴졌다.
뉴욕은 거리를 느끼는 도시라고 했던가. 그렇게 우리는 거리를 느끼며 맨해튼 서쪽 강변의 Pier 83 (42번가 근처), ‘세인트 항구’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 둔 크루즈 노선은 세인트 항구에서 출발해 브루클린 브리지를 지나,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돌고, 해가 진 뒤 자유의 여신상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였다.
탑승객 대부분은 여행자였고, 특히 가족 단위가 많았다. 맞은편에는 유모차를 탄 아기와 젊은 부부가 보였는데, 과자와 피자를 포장해 탑승하는 모습이 정겨웠다.
아기는 동양인 남성인 내가 신기했는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내가 웃어 보이자 활짝 웃으며 반응했다.
먼 곳까지 와 보는 아이의 예쁜 웃음은 뉴욕에서 내게 주는 또 하나의 기쁨이었고 설렘이었다. 만약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부모에게 인사라도 건네며 아이와 인사하고 악수라도 건넸을 텐데, 매번 여행 때마다 영어 실력이 아쉽다.
같이 간 MJ는 영어도 잘하고 외국인과 스몰토크도 능숙하지만, 시차 적응 실패로 하루 종일 졸린 눈으로 돌아다녔다.
탑승이 완료되자 크루즈는 천천히 출발했고, 세인트 강 위로 맨해튼의 빌딩 숲이 펼쳐졌다. 바깥으로 나가 바람을 맞으며 강물 위 도시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강바람이 옷을 스쳤지만, 뉴욕의 따뜻한 봄날은 그조차도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저 멀리, 영화와 SNS에서만 보던 브루클린 다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빌딩 숲 사이로 이어지는 그 다리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근사했다. 자유의 여신상만큼이나 브루클린 다리를 가까이에서 본 감동이 컸다.
브루클린 다리를 지난 후 해는 빠르게 저물었고, 어둠이 내려앉은 세인트 강 위로 뉴욕의 빌딩 숲은 각자의 조명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조명 속에 우뚝 선 자유의 여신상이 눈에 들어왔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선물한 조각상이다. 리버티 섬에 위치한 이 동상은, 이민자들에게는 새로운 시작과 희망의 상징이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이 랜드마크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리는데 이 랜드마크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렇게 허드슨 강 위에서 바라보는 자유의 여신상도 참 멋져 보였다.
이날 크루즈는 저녁 하늘부터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까지, 뉴욕의 시간을 눈으로, 피부로, 마음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뉴욕에서의 첫날을 멋지게 마무리한 순간이었다.
크루즈를 마친 후, 숙소인 인터컨티넨탈 뉴욕 타임스퀘어까지 치안도 안전했고, 거리도 멀지 않아 도보로 이동했다. MJ에게 라운지 이용권이 있어 저녁은 호텔 라운지에서 간단히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루를 마치는 정말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