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에서 스토너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시련을 던져주는 로맥스를 처음 봤을 때, 그가 자기랑 비슷한 것을 느꼈다고 생각하면서, 동지라고 여기다가 뜻밖의 반전을 맞이한다.
스토너는 로맥스에 대해서 회상한다. “로맥스는 길고 긴 낮과 밤을 방에서 혼자 보내며 자신의 일그러진 몸이 강요하는 한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점차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 자유의 본질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그가 느끼는 자유로움도 더욱 강렬해졌다.”
이 장면에서 스토너가 로맥스에게서 느낀 건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일종의 그 안에 있던 그늘과 울림을 알아본 순간이었다. 로맥스가 말한 ‘책을 통해 육체의 한계를 넘어 자유를 맛본 경험’은 스토너가 농장에서 흙을 파던 소년 시절에 문학을 만나며 겪었던 체험과 닮아 있다. 스토너도 자신의 삶을 구속하던 가난, 무지, 고립으로부터 도망치듯 책을 통해 넓은 세계를 발견했고, 거기서 자유의 진정한 본질을 처음 깨달았다.
그래서 로맥스의 고백은 스토너에게 낯선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왔다는 친근감의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 순간 스토너는 로맥스를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같은 자유를 맛본 동료로 보았고, 그것이 뜻밖의 친밀감으로 이어졌다. 결국 스토너가 느낀 건 지식과 문학이 가져다주는 자유의 체험은 누구에게나 고유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라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스토너는 로맥스의 왜곡된 육체와 그것을 넘어서는 지적 열망 속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데이비스 매티스의 그림자를 어렴풋이 보았다. 매티스는 스토너에게 있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스러졌지만, 지적 자유와 학문적 진실을 끝까지 추구했던 동지이자 이상적인 친구였다.
스토너와 로맥스의 갈등은 처음부터 정면충돌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로맥스의 제자 홀리를 둘러싸고 서서히 불거진다. 홀리는 무능하고 공부에 대한 열의도 없는 학생이다. 그는 학문적 성취보다는 로맥스와의 관계와 특혜에 의존하려 했다. 스토너는 그의 무능을 엄격하게 평가했고, 이는 곧 홀리를 비호하던 로맥스와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겉으로는 홀리를 둘러싼 다툼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스토너와 로맥스가 각자 삶을 추구해 온 학문적 윤리와 자유 의식이 정면으로 맞부딪힌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서로를 동지로 여겼던 두 사람이, 결국 학문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로 돌이킬 수 없는 적대자가 된 것이다.
로맥스가 홀리를 두고 스토너와 맞부딪히는 순간, 로맥스는 더 이상 책을 통해 자유를 갈망하던 내면의 동지가 아니라, 권력과 위선을 무기로 삼는 적대자로 변한다. “그 친구는 불구자야.”라고 스토너를 비난한다. 이 말은 스토너를 향한 은밀한 조롱이다. 홀리의 불구를 들먹이며 스토너의 학문적 엄격함을 무자비함으로 매도하고, 동시에 자신의 결핍을 스토너에게 되비추는 방패로 쓴 것이다.
적과 동지의 갈림길
처음 만남은
어두운 방에 켜진 등불 같았다
책 속에서 건져 올린 자유
그 빛을 서로 느끼며
잠시 동지가 되었네
시간이 흐르자
상냥함은 가면이 벗겨지고
위악의 미소가 얼굴을 덮는다
“그 친구는 불구자야”
그 한마디에
조롱의 칼날이 번뜩인다
그제야 알았네
서로를 잇던 자유의 빛은 사라지고
이제 남은 건
적과 동지를 가르는
가혹한 갈림 길뿐임을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스토너는 학과장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오랜 친구인 고든이 스토너에게 제안한다. “자네는 학과장에 생각이 있어?” 그러자, 스토너가 거절한다. “별로 원하지 않아.” 스토너는 학문적 정직성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이 곧 시련의 운명을 불러온 것이다.
홀리 문제를 두고 벌어진 논쟁에서, 스토너는 학문적 기준을 굽히지 않는다. 그 엄격함은 로맥스에게는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제자에 대한 모욕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로맥스는 “내가 경고 하나 하지, 스토너 교수. 나는 이 문제를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소. 당신은 오늘 여기서 암시적으로 모종의 비난을 했고, 편견을 드러내서…”라며, 이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로맥스가 문제 삼은 것은 학문적 진실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비난받았다는 감정이라는 점이다.
이 장면은 결국 갈등의 본질을 드러낸다. 스토너는 학문적 양심을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이고, 로맥스는 권위와 체면을 지키려는 사람이다. 두 사람이 선택한 길이 완전히 갈라지며, 더 이상 화해의 여지는 사라져 버린 순간이 바로 이 분노의 폭발이다.
스토너는 고든에게 로맥스의 제자 홀리를 불합격시킨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 셋이 함께 있을 때 매티스가 뭐라고 했냐면, 대학이 소외된 자, 불구가 된 자들이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라고 얘기를 했어. 우리에게 희망은 그 친구를 허락하지 않는 것뿐일세.”
매티스는 대학을 세상에 밀려난 자들이 진리와 자유를 붙들 수 있는 피난처로 바라본 선언이다. 스토너는 이 선언을 깊이 새겨, 자신의 학문적 태도의 근간으로 삼았다. 홀리는 성실과 진실을 결여한 채, 권위와 연민만을 발판 삼아 학위를 받으려 했다. 그런 자를 허락하는 것은 곧 대학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라, 스토너는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로맥스가 학과장이 된 뒤로는, 스토너에게 엄청난 난관이 주어진다. 스토너는 권력의 자리에 뜻이 없었고, 학문적 진실만을 좇았다. 반면에 로맥스는 달랐다. 학과장 자리에 오른 그는 자신의 권위를 무기로, 스토너를 조직 안에서 점점 고립시킨다. 결국 로맥스가 학과장이 된 뒤의 시간은, 스토너에게 있어 학문적 양심을 지킨 대가를 치러야 했던 고난의 계절이었다.
심지어, 로맥스는 종신교수인 스토너가 정년을 2년 연장하는 것도 방해한다. 로맥스는 스토너의 학문적 성과를 축적하지 못하게 막고, 강단에서의 시간을 줄이며, 마침내 스토너가 남길 수 있는 마지막 흔적까지도 깎아내리려 했던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스토너는 왜 묵묵히 이런 시련을 받아들였을까? 소설을 다 읽고 내린 결론은, 결국 스토너가 로맥스의 시련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의 열정 덕분 아닐까?
열정의 불씨
농장의 흙먼지 속에서
책 한 권을 붙잡았을 때
그의 삶은 불타기 시작했네
로맥스의 조롱
고립의 그림자 속에서도
불씨는 꺼지지 않았네
책 속에서 자유를 마주할 때
그는 패배자가 아니라
끝까지 학문적 양심을 지켰네
그의 침묵은 체념이 아니었고
그의 고독은 포기가 아니었다
열정,
그것은 그를 지탱한
영원한 불씨였네!
스토너:존 윌리엄스 지음/김승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