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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Jul 20. 2024

도어록

 말- 윤종신


말하려 너에게 말하려 말하려다 그러다 만다

말이라는 게 너를 담을 수 있을까 언제나 뱉으면 후회였던


그렇게 바라만 보다가 내 마음이 말 하라 하네

머뭇거리다 그 웃는 모습이 좋아 그걸 멈추는 게 싫었기에 초라한 눈 인사만


넌 지금 그대로가 행복해 그래서 아름답잖아

내가 거기 끼어들면 우리 서로 어색해질 텐데 다신 내게 웃지 않을지도


말하려다 그 아꼈던 진심은 꼭 꺼내야만 빛나는 걸까

묻으면 저 깊이 아껴 둔다면 마냥 답답한 사람일까


나 이제는 내 말을 믿지 않아 애타서 조급한 그 고백들

지금처럼 이 설레는 날이 더 좋은 걸 알았어


어쩔 땐 조그만 내 입이 참 많은 걸 해낸 줄 알았지

끄덕이는 너 우쭐한 만족 다음엔 바뀌어진 기분들 무책임한 모순은 내 알 바 아닌 걸


우린 지금 이대로가 참 좋아 저 멀리서 들리는 너의 웃음소리도

그만큼의 거리라서 귀 기울여 이쯤에서 바라본 넌 참 아름다워 정말


말하려다 그 아꼈던 진심은 꼭 꺼내야만 빛나는 걸까

묻으면 저 깊이 아껴 둔다면 마냥 답답한 사람일까


나 이제는 내 말을 믿지 않아 애타서 조급한 그 고백들

지금처럼 이 설레는 날이 더 좋은 걸 알았어

지금을 나 혼자 알겠지 말하지 않은 소중한 너

https://youtu.be/Vcq4Au5ZqXw?si=xQc1iQYD4mSmSNDq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인해 직장 동료들과의 저녁 약속이 취소되었다. 하늘이 어둑하고 스산하더니 기어이 세차게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터놓고 상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가을에 있을 직장 내 부서 이동에 대해 조언을 구할 요량이었다. 회사 조직은 묵묵히 일하는 사람의 세세한 사정과 노고를 일일이 헤아리지 않았다. 자기 수고와 성과를 과장해서 생색내는 사람에게는 억지로라도 처우가 이루어졌다. 물론 자신을 과대 포장해서 상품 가치를 높이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하지만 남들은 기피하는 난해한 업무를 불평 없이 잘 끌고 가면 오히려 붙박이로 고정되는 현실은 불합리했다. 사고를 내거나 변변찮은 어려움에도 죽는소리를 하는 사람은 비교적 쉬운 부서로 이동하였다. 결국 막다른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어떤 방식으로든지 스스로 활로를 개척해야만 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동료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나면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입사 초창기에 함께했던 직원들은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뭘 하든 예전 멤버들이 편하고 좋아. 이제는 누가 들어와도 옛날 같지가 않아." "우리도 이제 늙어서 그래." 늙음과 낡음은 언제나 행보를 같이 하는 법이었다. 관계에 있어서만은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옛 방식이 좋았다. 같이 욕먹고 고생해 가며 동고동락한 시간 때문인지 제법 끈끈한 유대가 형성되었다. '그냥 만나자고 할까? 홍수가 온 것도 아닌데.' 단톡방에 말을 꺼내려다가 그만두었다. 모두가 내 맘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른셋, 적지 않은 나이에 계약직으로 입사했을 때 동료들은 이미 10년 차 안팎의 고참들이었다. 각자 업무가 바빠서 처음부터 살뜰하게 챙겨준 것은 아니었지만 서툴고 빈틈투성이인 늦깎이 신입사원을 넉넉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었다. 3년 만에 정규직이 되었을 때도, 생애 첫 집을 장만해서 집들이에 초대했을 때도, 마흔에 겨우 결혼했을 때도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축하해준 사람들이었다. 

 

 L은 난임 치료를 3년 가까이 하다가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아이를 가졌다. 직장 생활과 난임 치료를 병행하며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은 몸과 마음이 축나는 시간이었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견뎠는지 대견할 뿐이었다. 뱉지 못하고 속으로 삼킨 불안의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정작 L은 엄살 섞인 장난으로도 힘든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너 닮은, 야무지고 강단 있는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할게." 그녀의 생일을 맞아 소소한 선물과 축하 카드를 건넸다. "됐고. 쌍둥이 안 낳게나 기도해 줄래? 늙은 엄마 아빠라서 둘은 못 키울 거 같아." 천진하게 웃던 그녀는 그때의 자기처럼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는 내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H는 같이 근무하는 동안 애를 둘이나 낳았다. 가끔 모임 때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는데, 아이를 좋아하는 나는 꼬맹이들을 품에 안고 놀았다. H의 첫인상은 콧대 높고 쌀쌀맞은 똑순이였다. 당돌한 면이 있었지만 알수록 의리가 있고 정이 많았다. 관계성이 탁월해서 모임의 중심 역할을 했다. K는 관대하고 인자한 엄마 같았다. 자기 말을 늘어놓기보다 남의 말을 차분하게 잘 들어주었다. 지금의 내 업무를 맡은 적이 있어서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전화해서 도움을 청했다. 귀찮을 법도 한데 짜증 한 번 안 내고 매번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과장 승진 명단에서 K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내가 승진하는 것처럼 기뻤다. "너는 일도 잘하고 나보다 대인관계도 좋으니까 나중에 꼭 승진할 거야." K는 자축하는 대신 타인을 먼저 위로하고 응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다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직설적으로 말해 본 적도 없지만 아끼는 마음이 각별한 것은 사실이었다. 처음 짝사랑의 열병에 빠졌을 때처럼 서로를 대하는 마음에 간극이 존재하더라도 진심으로 그들이 행복하길 빌었다.


 모임이 취소된 탓에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스마트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기 위해 터치했는데 인식이 되지 않았다. 원래는 접촉하면 번호를 누를 수 있게 기기가 작동하는데 고장인 듯했다. 관리 사무소에서 와서 외부에서 배터리를 연결해 주었는데도 불통이었다. 마음의 문을 닫아 대화가 불가한 사람처럼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상대의 비밀을 안다고 해도 누를 수 없다면 문은 열리지 않는 법이었다. 집이 코앞인데 발만 동동 구르며 영원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상을 했다. 결국 도어록 설치 업체가 출동했다. 드릴로 장치를 강제로 뚫어서 문을 열었다. 도어록은 새것으로 교체했다. 기기의 노후나 외부 충격으로 인해 기판이 파손된 것 같다고 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 습도는 높은데 땀을 뻘뻘 흘리며 문 앞에서 무려 두 시간을 지체했다. 게다가 27만 원이나 되는 생돈이 날아갔다. 이런 경우 집주인과 세입자 누가 비용을 지불해야 되는지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었다. 집주인이 해주는 경우도 있고 반반씩 내는 경우도 있었다. 집주인이 막무가내로 나올 경우 울며 겨자 먹기로 세입자가 전액 부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일단 전화해 보자.' 아내는 초장부터 기선을 제압하고 전액을 요구하라고 했다. 안 해주면 이사 갈 때 도어록을 떼어간다고 으름장을 놓으라는 것이었다. 마음이 약한 탓에 그렇게는 못 하고 반반씩 부담하는 게 어떠냐고 정중하게 제안했다. 집주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흔쾌한 승낙 뒤에 장마 피해와 감기를 조심하라는 안부 인사까지 남겼다. 주인이라는 칭호가 걸맞을 정도로 품위와 교양을 갖춘 사내였다. "거봐, 내가 말한 대로지. 전액 다 부담하라고 했어도 됐을걸." 아내는 다부지지 못한 내 태도를 타박하며 큰소리를 뻥뻥 쳤다. 만약 공손한 태도와 합리적인 말이 아니라 고압적인 윽박이었어도 결과가 같았을까.  

 말은 힘이 세지만 언젠가부터 내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내가 뱉는 말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덩어리였다. 늘 가볍고, 성급했다. 일단 뱉어 놓고 후회하며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했다. 때론 모자라서 전달력이 떨어졌고 간혹 과해서 과오를 남겼다. 때때로 달변보다 묵언이 나았다. 요란하게 내리는 빗소리에 누군가를 증오하고 원망하던 마음의 응어리를 흘려보냈다. 때로는 몽니가 가득한 아내와의 무심한 대화 속 표현하지 못한 감사와 미안함의 말을 되새겼다. 직장 동료들에게 빚진 마음,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전하려던 진심을 말하려, 말하려다 그러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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