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 균열
(* 이 이야기는 실제 인물, 단체,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이름과 장소, 대화는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혹시 실제와 닮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연에 불과합니다.)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을 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 가득한 곳으로.
집을 나와서 차에 올라탔지만 출발하기가 망설여졌다.
사람들이 사무실에 없는 시간이 언제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오전 11시 반?
점심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러 가는 오후 12시?’
언제 사무실에 도착해야 할 지에 대한 답을 낼 수 없었다.
결국 20분이면 도착하는 회사까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건물 앞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건물 앞까지 향하는 걸음이 무거웠다.
계속해서 도망치고 싶었다.
분명 나의 의지로 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누가 등을 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건물에 들어가자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났다.
이상하게 쳐다보고 지나가는 눈초리, 들으라고 비아냥 거리는 말들.
엘리베이터를 향해 가는 길일뿐인데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가고 있는 듯했다.
무언가가 나타나서 나를 헤칠 것만 같은 느낌과 함께 겨우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버튼을 누르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바닥에 그어진 선을 넘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8F
버릇처럼 익숙하게 눌렀던 버튼이 낯설게만 다가왔다.
망설임이 가득한 손가락을 쥐었다, 피며 누를 수밖에 없었다.
‘띵’
닫혔던 문이 열리고 그어져 있는 또 다른 선을 향해 넘어갔다.
조용한 복도에는 내가 걷는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되뇌면서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버리고 싶은 충동이 가득했지만, 버릴 수 없었던 사원증을 카드 리더기에 대고 문을 열었다.
사무실은 적막이 가득했다. 다행히 사람이 적은 시간대였다.
평소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갔지만, 신고 온 신발 그대로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과 함께.
자리에 가까워지자 나를 발견한 김재원 사원이 빠르게 일어나서 사무실을 나갔다.
옆자리인 김명기 대리는 모니터만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반대편 자리에 앉아있던 이종현 차장이 뒤를 돌아 나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어, 지민 씨 왔어?"
"네"
얼굴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단답으로 대답하고, 들고 있던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선배님"
날 부르는 강예은 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또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답하지 않았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옆에 서있었다.
굳은 얼굴로 쳐다봤다.
"아.. 알겠습니다"라고 하며 강예은 사원이 멀어졌다.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책상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책상 오른쪽 아래 슬라이드를 펼치고 숨겨두었던 열쇠를 꺼냈다.
열쇠를 돌려 잠겨있던 서랍장을 열었다.
입사할 때 받았던 물건들과 명함, 서류, 상비약이 엉켜있었다.
서랍장 안의 모든 물건들을 거칠게 꺼내서 책상 위에 마구잡이로 올렸다.
한 번에 들어 올려 사무실에 있는 휴지통을 향해 걸어갔다.
거의 던지다시피 휴지통에 물건들을 버렸다.
돌아서서 바로 사물함을 향해 갔다.
자리에 앉아있던 최형민 과장이 내쉬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사물함 비밀번호를 돌려서 맞추고 문을 열었다.
재킷, 서류 뭉치, 선물 받았던 비타민들이 보였다.
빠르게 꺼내서 또 다 버려버렸다. 물건들을 다 버리고 나니 숨을 가쁘게 몰아 쉬고 있었다.
사무실로 박동훈 차장이 작은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 지민 씨..!”
말을 걸어오는 박동훈 차장의 얼굴을 한번 쓱 쳐다보고 지나쳐서 자리에 올려둔 가방을 가지러 갔다.
나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했다는 걸 알았지만 받고 싶지도,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기준 씨, 어디야 지금?”
전화를 거는 박동훈 차장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가방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