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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끝내 마주하는 벽

by 신아르케

이성은 늘 우리를 멀리 이끈다. 눈에 보이는 경험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처음과 끝을 묻고, 시간과 공간의 끝자락을 더듬는다. 그러나 발걸음을 아무리 내디뎌도, 그 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하나의 문이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문, 정립과 반정립이 맞부딪히는 모순의 벽이다.

칸트는 이를 초월적 착각이라 불렀다. 시간과 공간, 인과의 법칙은 경험 안에서만 제 힘을 발휘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억지로 무한으로 늘려 세계 전체에 덧씌운다. 그 순간, 이성은 스스로 모순의 그물을 짜고 만다. 세계는 시작이 있는가, 아니면 끝없는가. 사물은 단순한 알갱이로 쪼개지는가, 아니면 끝없이 흩어지는가. 모든 것은 법칙에 매여 있는가, 아니면 자유라는 창이 열려 있는가. 필연적 존재자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네 가지 질문은 언제나 서로 다른 방향에서 부딪치며, 결국 어느 한쪽도 확정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이성이 마주하는 이 장면은 인간의 교만을 비추는 거울 같다. 우리는 끝내 닿을 수 없는 전체를 붙잡으려 하지만, 손아귀에는 모순만 남는다. 그러나 칸트가 전하고자 한 것은 포기가 아니었다. “나는 모른다”라는 겸허 속에서 이성은 길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백이 새로운 나침반이 된다. 신, 세계, 영혼 같은 이념들은 지식을 세우는 돌은 되지 못하지만, 길 위의 별빛처럼 탐구를 이끄는 빛이 된다.

나는 여기서 깨닫는다. 진리를 향한 우리의 길은 직선이 아니라 굽이진 길이다. 때로는 벽 앞에 멈춰 서야 하고, 때로는 모른다는 고백을 내뱉어야 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겸허한 이성은 더 이상 오만하게 확신하지 않지만, 그 대신 더 멀리, 더 깊이 묻는다.

결국 인간이란, 알 수 없는 세계 앞에서 멈추되, 멈춤 속에서 다시 묻는 존재다. 그 겸허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리의 그림자를 더 가까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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