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
자존감, 참 어려운 단어입니다. 자존심이 뭔지는 대충 느낌적으로 알겠는데 자존감이 뭔지는 전혀 감도 안 오더군요.
'자존감이 높아야 하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
최근 들어 많이 들었던 문장인데 볼 때마다 참 어색하고 어떻게 적용해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물음표가 마구 찍히더군요. '도대체 자존감이 무엇인가?' 하고 말이죠.
자존감, 찾아보니 '자아존중감'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재밌었던 것은,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 단어니 당연히 동양에서도 사용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심리학 용어인 self-esteem이라는 영어 단어를 번역한 것이더군요.
그렇지만 일단 제게 비교적 익숙한 한자로 그 뜻을 먼저 알아보려 합니다.
자아존중감이라는 한자를 직역하면 '스스로가 나를 존중하는 느낌'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존중(尊重)이란 한자는 尊 높을 존(또는 존귀할 존)과 重 무거울 중(또는 소중할 중)으로 '높이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를 합쳐 말하자면, 자존감이란 '스스로 나를 높이고 소중하게 여기는 느낌'을 뜻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거울을 봐도,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도 저를 높일 이유도, 소중하게 여길 이유도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저에게 '존중'이란 단어의 쓰임새는 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와 같은 경우에서만 봐왔거든요.
여기에 더해 존중받아 마땅하거나 가치가 있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매우 올바르거나 사회적인 명망이 높은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러한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도덕적으로 올바른가?'
'나는 사회적 명망이 있는가?'
'나는 그 정도로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수준인가?'
그리고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였지요.
이렇듯 저에게는 자아존중감이 허들이 몹시 높은 무언가를 넘어, 존재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위의 내용들 덕분에 한자를 풀어서 보는 것만으로는 자존감이란 단어를 이해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일단 저는 자존감을 뜻하는 영어단어인 self-esteem이 가진 의미와 뉘앙스를 먼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제 모국어는 한국어여서 영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에 해당 단어가 가진 뜻을 보다 자세히 알고자 영영사전으로 찾아봤습니다.)
self-esteem의 뜻은 belief and confidence in your own abillity and value, 한국어로 해석하면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라 합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제가 한자를 풀어서 본 자아존중감의 뜻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자존감의 한자 뜻은 윤리적인 부분이 필수로 포함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self-esteem은 윤리적인 것과는 상관없이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느낌이지요.
그렇기에 저는 왜 자아존중감과 self-esteem의 의미가 다른지, 보다 자세히 self-esteem이란 단어에 대해 낱낱이 알아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우선 self의 뜻을 영영사전에서 찾아보면
‘신체적이 아닌,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만드는 성격 및 능력과 같은 누군가의 일련의 특성’
‘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게 하는 사람의 본능 또는 본성, 특히 자아성찰 또는 반사적 행동의 대상으로 간주’
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제가 사용하던 self의 의미와 영영사전에서 설명하는 self의 의미는 생각 이상으로 차이가 크고, 실제로 뜻하는 바의 범위가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스스로, 당사자’ 정도의 느낌으로만 사용했으니까요.
그렇다면 esteem의 뜻은 어떨까요? 이 또한 영영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존중(respect) 또는 좋은 의견'
‘일반적으로 사람에 대한 존경(respect)과 감탄'
재밌게도 돌고돌아 ’존중(respect)‘이란 단어가 또 나왔습니다.
분명 self-esteem의 뜻에는 respect란 단어가 들어 있지 않았는데, 왜 따로 쓰일 때에는 존중이란 의미로 쓰일까요?
'내가 아는 존중과 respect가 가진 의미가 다를까? 존중에 대한 내 해석 자체가 잘못되었나?' 등등 여러 생각들이 들며 몹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호기심이 일더군요. ‘과연 높이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같을까?’ 하고 말이죠.
respect
‘당신이 좋은 아이디어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대해 느끼거나 보여주는 감탄'
‘누군가 또는 무언가의 능력, 자질 또는 업적에 의해 유발된 깊은 감탄을 하며 바라보는 감정'
역시나 한자 존중과 영어 respect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respect는 self-esteem과 마찬가지로 도덕이나 윤리를 넘어 상대 자체를 뛰어난 개인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위의 설명을 바탕으로 self와 esteem 이 두 단어의 뜻을 제 방식대로 조합하면,
’신체적 특성을 제외한 개인을 타인과 구별되게 하는 고유하고 전형적인 성격과 행동, 그에 따른 어떠한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업적을 낼 수 있다고 믿는 것에 의해 유발된 깊은 감탄‘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알 듯 모를 듯 어려울 실 겁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제가 봐도 어렵게 쓴 거 같습니다.)
허나 이러한 해석에 self-esteem의 의미를 더해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 특성을 제외한 나 자신이 가진 고유한 자질을 통해 발휘되는 스스로의 능력을 특별하다 믿고, 이것을 이용해 이뤄낼 수 있는 업적에 대해 가치를 느끼며 이를 통해 나타내는 자신감’
저는 이제야 자존감이 무엇인지, 스스로 나를 높이고 중하게 여기는 느낌이 무엇인지 피부에 와닿더군요.
그러나 와닿는 것과는 별개로, 저는 여기서 자아존중감이 가진 의미를 알게 된 것과 이것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 스스로 생각하기에 별 볼 일 없는 10대, 20대를 보냈고 취직도 못한 채 30대가 된, 로또에 당첨되길 바라는 망상이나 하는 백수인 저에게는 제 능력을 믿을 만한 근거도, 이뤄낸 업적도 없고, 업적을 이뤄낸다는 상상도 불가능하니 말입니다.
그렇기에 늘 하던대로 일단 self-esteem의 어원부터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self와 esteem 각각의 어원만이 따로 있더군요.
어쩔 수 없이 먼저 ‘자아’를 뜻하는 self의 어원을 알아봤습니다.
고대 게르만어인 selbaz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자기 자신’이란 뜻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esteem의 어원을 찾기 전, 먼저 존중 respect의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존중 respect의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 respicere에서 유래되었습니다. respicere는 re+spicere이 합쳐진 단어로, re는 ‘다시’를 뜻하고 spicere은 ‘바라보다’를 뜻합니다. 이것이 합쳐져 ‘뒤돌아보다, 고려하다, 살피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겁니다.
이제 esteem의 어원을 살펴봐야겠죠. esteem은 고대 프랑스어인 estimer(동사) ’추정하다, 결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또한 라틴어인 aestimare ’가치를 평가하다, 가치를 결정하다, 평가하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가치, 존중‘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16세기부터라고 하고요.
이렇게 찾아본 어원들이 가진 의미만을 바탕으로 self-esteem을 정의하면 이렇습니다.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고, 고려하고, 살펴서 가치를 평가하다.‘
전 여기서 좌절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제 과거는 고려할 필요도 없이 현실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낮기에 결국 자존감은 저에게 사용할 수 없는 단어로 느껴졌기 때문이죠.
’자신을 뒤돌아보고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과거를 살펴 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뜻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한자에서의 존중인 ’높이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말하는 것도, 영어에서의 존중(respect)인 ’상대 자체를 뛰어난 개인으로 생각해 감탄을 하는 것‘이 말하는 것도 결국 가치가 높아야 해당된다는 것이죠.
누구도 낮은 가치를 지닌 것을 중하게 여길 일도, 감탄을 내뱉을 일도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니까 말이죠.
그러나 바로 이 부분이 저도, 여러분도 모두가 속은 부분입니다.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주관적인 것일까요?
사실 무언가를 평가한다는 행위는 객관적인 요소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오롯이 주관적인 요소로만 이뤄지는 겁니다.
간단한 예시로 돌아가신 조부모님이나 부모님 또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남겨준, 당신이 소중히 여기던 낡은 시계가 있다고 해보죠. 물론 그 시계가 실제로는 돈을 받지도 못할 고물이고, 전문가가 ‘그 시계는 쓰레기입니다. 돈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니 버리고 좋은 시계를 사세요.’라고 평가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 말을 듣고 당신은 유품인 시계를 버릴 겁니까? 그 시계를 처분하고 새 시계를 구매할까요? 아니요. 오히려 전문가에게 화를 낼 사람이 많을 겁니다. 누가 어떠한 평가를 내린다 한들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일 테니까요.
이렇듯 평가를 하는 행위는 매우 상대적이며, 주관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보자면 스스로의 과거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현재에 대해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주관적인 거라고 보는 것이 맞겠죠.
그렇다고 해서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스스로부터 납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높게 평가했지만 과거를 돌이켜 봐도, 현재를 봐도, 미래를 그려봐도 그것이 현실감을 주지 않는다면 결국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낮게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존감은 우선 내가 얼마나 고유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졌으며, 뛰어난 업적을 이뤄낼 수 있을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제가 해석한 self-esteem의 뜻에서 ‘신체적 특성을 제외한’이란 말을 왜 했는지부터 설명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