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힘들다, 괴롭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내 나이에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안하고 두렵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다고 한다.
그런가?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요가도 더 이상 숨 쉴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근육의 힘을 푸는 것이 힘을 쓰는 것보다 어려운 것처럼, 나의 인생의 근육도 힘을 푸는 법을 모르는 듯하다.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고, 다 갖고 싶은지, 아등바등 모든 것을 움켜잡고 있다.
이 세상은 고통이다. 진정한 행복은 내가 눈을 감은 뒤에나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초기 불교에서도 현상 세계를 무상, 고, 무아, 부정으로 바라보았다. 모든 것은 덧없고, 고통스러우면서, ‘나’는 없고, 모든 것은 깨끗하지 못하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음이라 생각했다. 이 세상은 지옥처럼 끔찍하기 짝이 없으니 눈 감고 저 세상 가야 천국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이 기억들, 더 이상은 간직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마주하기 힘드니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어떤 의자에 앉아 최면술에 의해 나의 모든 기억과 잠재의식이 사라졌으면 했다. 그래야 광명이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이 세상은 잿빛이었고, 내가 내딛을 수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가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웃음과 감언이설은 소름 돋게 만들었다. 그 아무도 믿지 못하겠고, 나는 절망했다. 그냥, 절망했다. 절망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또 다시 절망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가진 듯했지만 나는 외롭고 쓸쓸했다. 책 더미 속에서 허덕이던 와중에 나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달콤했지만 허했다. 어른들은 내가 밝은 미래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명문대 나왔다고 다 밝지는 않는데 말이다. 평범한 가족은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밤마다 돌아온 집(house)은 아늑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복에 겨워 행복을 바라볼 줄 모른다고 욕한다. 그러나 나는 불행했다.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삶이라면, 나는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조차 없었다. 한탄스럽구나.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저 멀리 달리는 트럭이 핸들을 잘못 꺾어 나를 향해 달려오면 나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까? 어쨌든 나는 편안해지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랐다. 나는 여전히 경주마처럼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고 멈추는 법을 몰랐다. 안전장치 없는 기계가 돌아가듯 나는 움직였다.
“너는 이 세상이 행복하다고 생각해?”
친구에게 물었다.
“아니, 더럽고 치사하지. 이 세상은 고통이야.”
“그렇지? 그런데 살고 싶어?”
“그렇다고 죽고 싶진 않은데?”
“그래?”
이 세상을 고통이라고 생각해도 모두 그냥 사는구나. 어쩌면 당연하지만 나에겐 뒤통수 때리는 한 마디였다. 나는 이상했다. 이상을 감지했다. 나는 나를 살려야 했다. 사실 조금 더 솔직하게 기억을 지우러 갔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가, 의사 선생님께서 나의 기억을 지워 주시길 바랐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발 내가 정신건강질환이 있는 환자이길 바랐다. 그래야 내가 바라보는 잿빛 하늘이 언젠가 맑은 하늘로 바뀌지 않을까? 만약 이 상태가 정상이라면...생각만해도 끔찍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판정을 받았다. 다행이다. 나에게는 희망이 생겼다. 이것을 치료하면 된다. 그럼 나는 편안해질 것이다. 그렇게 장장 1년반, 나는 약물치료와 병원에서 진행하는 마음챙김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나를 돌보고 시작했다. 순탄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 지옥의 굴레에서 빠져나왔다. 정말,,,죽을 뻔했다.
만약 누군가 아직도 정신건강질환이 ‘나약해서 생긴 마음의 병’ 이라고 말한다면 아마 그 사람은 이 지독한 우울증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감기 걸린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는 연민을 느끼는 것은, 감기의 고통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를 바라보며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저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지독하게 죽고 싶으면서 죽을 만큼 살고 싶거든 그저 ‘나의 신경계에 문제가 생겼구나’ 생각하면 된다. 그 뿐이다. 감기약 먹듯 약 챙겨먹고, 감기 안 걸리게 우리 몸 챙기듯 우리의 마음도 챙기기 시작하면 된다. 어쨌든 그 시절 나는 죽고 싶었다, 그러나 살고 싶었다.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