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 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왜 불안할까?
불안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불안한 것은 불안장애일 수 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흔들리는 동공과 떨리는 손, 뛰는 심장과 압도되는 긴장감. 지금 나는 다시 한번 더 불안장애를 겪고 있나, 겸허히 바라본다. 그러나 그때의 그 느낌은 아닌 듯하다. 그럼 나는 도대체 왜 불안할까?
시시때때로 올라온 생각이었다. 불안할 이유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내가 현재 겪고 있는 감정을 나는 “불안”이라 정의 내렸다. 어쩌면 목표와 함께 지낸 세월의 습관이 뿌리 깊이 몸에 베인 것 때문일까? 정해진 목적지 없이 걷는 이 길은 너무나도 “불안” 했다. 붕 떠다니는 듯한 느낌은 마치 공중부양이라도 하듯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고꾸라질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다.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향해야 비로소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어렸을 때 정말 많이 듣던 레토릭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항상 목표가 있었다. 시험 성적의 목표, 대학의 목표, 인생의 목표 등등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몰려오는 시험과 과제는 “일단 이것부터 끝내자”의 반복이었다. 쉴 새 없이 당면한 미션들을 헤쳐 나가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정한 그 목표들이 정말로 내가 원한 것일까 생각해 본 적 없이 일단 도장 깨기에 정신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돌에 걸려 넘어져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잠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거기에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도돌이표 미로였지 천국을 향한 계단이 아니었다. 거기서 나는 나를 잃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나는 어디에 있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압도되는 감정에 또다시 숨이 벅차올랐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데는 걷기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한 발자국 디딜 때마다 발바닥의 감각을 느끼면 나는 끊임없이 “여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두둥실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여기서 대지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은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촉각이 나에게 속삭이듯 알려 주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걷는 것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걸을 때마다 나와 땅은 하나가 된 느낌이었고, 이 지구가 중력의 힘으로 나를 끌어당겨 감싸 안아 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연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지구가 나에게 알려준 것은 바로 이 한 마디였다: 내가 안아 줄게, 내가 옆에 있어 줄게, 내가 있으니 너는 흔들려도 괜찮아.
거센 바람이 몰아치면 나뭇가지는 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견고히 그 자리를 지킨다. 대지의 포용력일까, 아니면 대지의 따스함일까?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와 흔들림이 매혹적인 이파리를 보며 나는 또다시 위로를 얻는다. 너도 여기서 흔들리는구나. 그렇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어딘가에 도착해 있다. 따뜻한 집이든, 조용한 카페든, 배고픔을 날릴 밥집이든, 나는 어딘가에 와 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한 그 자리는 목적지가 아닌 잠시의 안식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에겐 목적지가 아닌 잠시 쉴 수 있는 따스한 공간이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