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속도위반 임신? 오히려 좋아!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성격이 급한 우리 딸은,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 선물처럼 찾아왔다.삼십 대 중반이 되니 ‘연애 결혼 임신’ 같은 순서 자체가 의미 없어졌다.


임신 사실을 알기 전, 우리는 전형적인 예식장을 벗어나고 싶어 스몰 웨딩을 알아보던 중이었다.하지만 스몰 웨딩도 말만 ‘small’이지, 비용은 여전히 ‘big’이었다.한국식 결혼 문화에 회의감을 느끼던 와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의 반응은 이랬다.


“오히려 좋아! 이제 보여주기식 결혼식은 안 해도 되잖아?”


사실 내가 꿈꾸던 결혼식은 따로 있었다.바닷가에서 나풀거리는 원피스 하나 입고,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밤새 춤추는 파티 같은 결혼식.


한 시간 남짓 되는 형식적인 진행 속에서,얼굴도 모르는 하객들에게 둘러싸여,움직이기도 힘든 꽉 끼는 드레스를 입고,사회자의 정해진 멘트에 맞춰 얼굴에 경련이 나기 전까지 조신한 미소를 지어야 하는,그런 형식적이고 의미 없는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때마침 찾아와준 아기 덕분에 그런 원치 않은 결혼식을 피할 수 있게 돼서, 우리는 진심으로 기뻤다.결혼식을 취소하고 우리는 조용히 약속했다.


언젠가는 우리가 원하는 결혼식을 꼭 하자고.누구의 눈치도, 도움도 받지 않아도 될 때, 오롯이 우리 능력으로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결혼식을 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남들 다 하는 결혼식도, 결혼반지도, 웨딩 촬영도 없이하루아침에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가족이 되었지만, 서로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다른 어떤 걸로 우리의 관계를 증명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결혼이라는 것 역시, 사람이 만들어 놓은 형식적 절차일 뿐이니까.


우리는 결혼식에 대한 고민을 때려치우고 훨씬 더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우리 세 식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기가 태어나도 부부관계가 소홀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훨씬 더 행복한 고민들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린 후 많은 축하를 받고,주변에 난임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더 확신했다.우리의 속도 위반은, 오히려 잘한 일이었다.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파워 J인 나에게 조차 인생에 완벽한 계획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금 주어진 것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 그뿐이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이걸 깨닫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가끔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보너스 같은 선물들이 오히려 더 좋고, 더 귀하다는 것을.



[요마카세] 목요일 : 어쩌다 엄마

작가 : 초보맘 비키

소개: 서른다섯에 엄마가 된 초보맘 비키, 자유로운 영혼에서 '엄마'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딸에게 남기는 성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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