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약나무
오늘은 투표하는 날.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단에 다기를 올리고, 개밥도 주고, 방으로 갔다.
아침을 먹고 나니, 뒷집 정님이가 왔다. 정님이는 배가 아파서 병원을 다녀왔다. 배가 나아서 커피 한 잔 먹어도 된다고 해서 같이 마시고 놀다가 자기 집으로 갔다.
고모와 둘이 투표를 하러 갔는데, 사전 투표를 한 탓인지 사람이 없어서 바로 하고 법당으로 갔다.
법당 동생이 쉬는 날이라고 와 있었다. 같이 기도하고 점심은 감자 옹심이를 해주었다. 식구가 많았다. 옆집 식구, 우리 작은 엄마까지 7명이나 먹었다.
집에 오니 바람이 많이 불어 고추밭의 비닐이 많이 걷혀 있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놓아두었다. 바람이 많이 불으니 고추도 많이 흔들려 끈을 묶어 주었다. 밭의 풀은 어찌나 잘 크고 많은지, 뽑아도 자꾸만 나오고, 비가 안 와도 풀은 잘도 큰다.
밭 옆에 서방님께서 오래전에 약나무를 심어 두었었다. 어찌나 잘 컸는지 밭을 많이 덮고 있어 걱정을 했는데, 고모가 그 나무 가지와 열매로 차를 만든다고 따러 왔다. 나뭇가지를 베어서 잎과 열매를 따면서 또다시 열심히 살으신 서방님 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도 사랑하는 동생이 그 약나무를 따가니, 덜 서운하고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열심히 살으시는 작은 아빠를 보면, 마음이 편안하질 못한다. 어깨는 아파서 아이고를 찾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일을 하니 안타깝다. 농사가 너무 많아서 둘이 날마다 하고 해도, 끝이 없다. 먹고사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힘들게 하신다. 이제는 조금 숨 쉬고 살아도 할 텐데... 큰아들 때문인지...
나는 오십 년을 살면서 여보라는 호칭을 안 불러 보고 살았다. 급하면 아들 이름을 부르면서 누구 아빠하고 불렀다. 아니면 급하면 “아빠”하고 불렀다. 한번 (입에) 안 붙으니 호칭이 그러했다. 안 고쳐지고, 꼭 그렇게 불렀다.
한 번은 따님이 “우리 아빠지, 엄마 아빠가 아니야!”라고 하면서 많이 웃은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 번하면 잘못 고치고, “여보”라는 이름을 한 번도 못하고 안 불러 드리고 말았다.
습관이 참 무서운 것이다.
당신을 많이 좋아하고 사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