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오랜만에 (시니어) 일자리 일에 갔습니다. 모두가 함께 만나니 반갑습니다. 이야기들도 나누고, 일도 하고 있었지요. 팀장님도 오셨다. 항상 웃는 얼굴로 웃고 들어온다.
일을 마치고 땅콩을 캤다. 고모도 도와주시고 뒷집도 와서 도와줬다. 한 고랑씩 따다 먹으라고 했다. 보기에는 조금인 것 같지만, 마음이고 성의이니, 캐다 먹어보라고 했다. 성희네도 캐다 먹어보라고 했다.
조금 캐서 땅콩을 씻어 놓았다. (무거워서) 가지고 갈 수가 없어서 작은 아빠가 들어다 주셨다. 아무래도 힘이 들어 나는 할 수가 없다. 혼자 있다는 게, 거기서 표가 났다.
(엄마는 무거운 포대를 든 적이 거의 없다. 고추를 딸 때도 무거운 포대는 아빠가 들마셔주셨다. 그러니 땅콩 담긴 포대를 물끄러미 보며 작은 아빠가 오시기를 기다렸던 순간에 울컥하셨나 보다. 49년 동안 애지중지 사랑해 주던 아빠가 많이 생각나셨던 것 같다.)
그럭저럭 하루 해는 또 넘어간다.
춘자는 너무 아퍼서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병원에서도 이모의 병명을 진단하지 못하고 진통제만 처방하고 있다. 엄마의 일기가 한동안 끊어진 것은 이모 걱정으로 힘드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달 동안 엄마 옆을 지켰던 동생이라, 엄마의 마음이 더 무겁고 힘드셨던 것 같다. 그 마음 알기에...)